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화개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멸실 / 구장터에 음식점이 들어서 있으며, 옛날 장터가 있었음을 알리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 맞은 편에 공용버스터미널이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6일과 11일 하동군 화개면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주석(金周錫)/정상근(丁湘根)/양봉원(梁奉源)/이정수(李汀秀)/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임문규(林文圭) |
| 관련 내용 |
화개면 정금리에 사는 김주석(金周錫)은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雙溪寺)의 승려로 학생인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과 더불어 1919년 4월 6일 화개장날을 만세시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준비하였다. 4월 6일 이들은 장이 거의 파할 무렵인 오후 6시에 3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일제 경찰의 탄압에 의해 곧 해산되고 시위를 지도했던 인물들은 검거되었다. 4월 10일 밤에는 화개면 정금리에 사는 이정수가 이강률·이정철·임만규 등과 함께 화개장날인 4월 11일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이정수의 제안으로 주민들에게 시위에 참가할 것과 면직원들에게 사직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여 임문규로 하여금 화개면사무소 정문에 붙이도록 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1일 정오 무렵 이정수를 비롯한 주도인물들은 화개정터에 운집한 군중들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
| 참고 문헌 |
경상남도경찰부, 『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283~284쪽. 정재상, 『하동의 독립운동사』, 악양면청년회, 2000, 25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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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
|---|---|
| 주소 |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662-7· 71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고등경찰관계적록』과 「이정수 등 4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화개장이 섰던 곳은 시장 상인들과 마을 주민들을 통해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화개장터 3·1운동 기념비
화개장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옛 화개장터 원경
옛 화개장터 근경
옛 화개장터 근경
옛 화개장터 근경
옛 화개장터 근경
옛 화개장터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