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해인사 일주문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일제시대에 홍하문으로 되어 있던 것이 현재는 일주문으로 현판이 바뀌었다. |
| 정의 | 1919년 3월 31일 해인사의 지방학림 학생 홍태현·백성원 등이 주도하여 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31 합천군 해인사 지방학림 학생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홍태현/백성원/김경환/김성구 |
| 관련 내용 | 황해도 해주군 출신으로 당시 해인사 부속 지방학림 학생인 홍태현(洪泰賢)은 그곳 학생인 백성원(白聖元)·김경환(金景煥)·김성구(金聖九) 등과 더불어 해인사 내 지방학림 기숙사에서 의거를 모의하였다. 1919년 3월 31일 오전 11시경 해인사 홍하문(紅霞門 - 현재의 一柱門), 밖에 2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먼저 독립만세를 불렀다. 학생들은 오후 1시 해인사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시위를 하였으나 경찰들이 총을 발사하여 일단 해산하였다. 그날 밤 11시경 150여 명의 군중들이 다시 봉기하여 해인사 앞 도로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학생들은 이들과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곧 일제 경찰들에 의해 강제해산을 당하고 말았다. 시위에 앞장 선 홍태현은 검거되어 1919년 6월 1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6월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다. |
| 참고 문헌 |
「홍태현 판결문」, 1919년 6월 28일, 국가공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경찰부,『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2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3·1운동사(하), 1971, 336~33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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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
|---|---|
| 주소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
| 위치 고증 | 『고등경찰관계적록』과「홍태현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해인사 일주문은 일제시대에는 홍하문으로 불리었으며, 관련 사실을 해인사 성보박물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해인사 극락암
해인사 일주문 측면
해인사 경내
해인사 일주문 원경
해인사 정면
해인사 경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