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안성 만세고개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만세시위를 한 일대는 도로로 정비되어 있으며, 안성3·1운동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또한 만세시위를 한 원곡에서 만세고개로 가는 입구에는 3·1운동기념탑이 건립되어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 면민 1,000여 명이 성은고개에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41.4.1 안성군 원곡면 성은고개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이덕순(李德順) |
| 관련 내용 |
성은고개(현 만세고개)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1919년 3월 25~26일경부터 원곡면내 각 동리에서는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다 원곡면사무소로 모이는 일이 잦았다. 1919년 4월 1일 저녁 8시경에도 원곡면 각 동리의 1,000여 명의 시위대는 등불 또는 횃불을 밝혀 들고 면소재지인 외가천리로 다시 모였다. 이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다음 '이제부터 면장을 끌어내어 국기를 쥐어 선두에 세우고 만세를 부르면서 양성경찰관주재소로 가자'는 이유석(李裕奭)의 제안에 따라 면장 남길우와 면서기 정종두를 앞장 세우고 만세를 부르면서 약 8km 떨어진 양성면으로 향하였다. 양성면과의 경계인 성은고개에 이르러 이유석·홍창섭(洪昌燮)·이덕순(李德順) 등이 연설을 하여 시위대의 결의를 다진 다음 몽둥이와 작은 돌들을 들고 양성면 소재지인 동항리로 가서 양성경찰관주재소와 양성면사무소·양성우편소 등을 방화 또는 파괴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 참고 문헌 |
「최은식 등 125인 판결문」, 1920년 8월 1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3, 1979, 146·152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422~482쪽. 이정은, 『안성군 원곡·양성의 3·1운동』, 원곡·양성 3·1운동선양회, 1992. 박환, 『경기지역 3·1독립운동사』, 선인, 2007, 93~97쪽. 안성시지편찬위원회, 『안성시지』1, 안성시지편찬위원회, 2011, 509~511쪽. 김대용·나은주, 『안성독립운동자료집3 서안성지역』, 안성시, 2020, 35쪽. 박환, 「경기도 남주지역의 정면대결 시위」, 『3·1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지역적 전개』, 경인문화사, 2019, 363~374쪽. 「안성의 최은식4 등 126명 예심종결 결정」, 『매일신보』 1919년 8월 10일, 3면. 「금일 공판 개정되는 안성사건 예심결정서」, 『동아일보』 1920년 7월 23일. 「안성사건 예심결정서」, 『동아일보』 1920년 7월 25일,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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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2 |
|---|---|
|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칠곡리 2-18)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최은식 등 125인 판결문」 및 『독립운동사자료집』 5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안성독립운동자료집3 서안성지역』를 통해서도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