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일 비행장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기타(비행장)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포항지구 방어를 위해 1950년 8월 10일 미 제2사단 브래들리특수임무부대가 북한군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하면서 지켜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포항 전투, 안강 전투 |
|---|---|
| 관련 조직 | 브래들리특수임무부대, 미 제8군사령부, 국군 제17연대 |
| 관련 인물 | 브래들리 준장, 워커 중장 |
| 관련 내용 |
1950년 8월 10일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포항이 위기에 처하자 미 제8군 예비대인 미 제2사단장에게 특수임무부대를 급편해 영일비행장을 방어할 것을 지시하였다.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미 제2사단장은 부사단장 브래들리 준장에게 방어부대를 편성하여 방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브래들리 주력부대보다 늦게 출발한 미 포병부대 등이 자정이 지난 8월 11일 새벽 1시 20분경 유금동 남쪽 터널고지 남단을 통과할 때, 매복중인 북한군 제766부대의 기습을 받고 70여 명의 인명손실이 발생하면서 경주로 철수하고 말았다. 영일비행장에서 보고를 받은 브래들리 준장은 즉시 미 제3대대를 출동시켰으나, 이들 역시 적의 매복부대로부터 기습을 받아 고착되고 말았다. 워커 중장은 포항의 피탈에 따른 전세 변화와 브래들리 후속제대의 피습 상황을 보고 받고, 즉시 경주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 제9연대의 전차 1개 소대를 영일 비행장으로 진출시켰다. 그리고 안강에 투입되어 반격을 개시한 국군 제17연대에 터널고지를 확보하도록 명령하였다. 항공지원 요청으로 F-51 무스탕 전투기 1개 편대가 출격하여 터널고지대에 집결해 있던 적을 강타하였다. 이와 함께 미 전차소대가 터널고지 부근까지 진출하여 적 병력 70여 명을 사살하고 오후 8시 30분경 영일 비행장으로 복귀하였다. 영일 비행장의 위기를 가까스로 극복한 후 미 제9연대 제3대대가 영일비행장 경비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559-560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35-34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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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 |
|---|---|
| 주소 |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 276-3 |
| 도로명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일월로 18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국군 제3사단이 1950년 8월 10일부터 8월 17일까지 영일 비행장 일대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방어하여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














영일 비행장 청사 주변
영일 비행장 근경
영일 비행장 일대
영일 비행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