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함양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도로 및 시설물의 증가로 당시의 모습이 상당히 변형되었다. |
| 정의 | 1950년 7월 26일 북하군6·25전쟁이 발발 이후‘김성은 부대’가 1950년 7월 28일 함양 동북방 4km 지점에서 적 1개 대대와 접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거창 전투, 안의 전투 |
|---|---|
| 관련 조직 | 김성은부대 |
| 관련 인물 | 김성은, 민기식, 오덕준 |
| 관련 내용 |
1950년 7월 21일 대전이 함락된 후 북한군 제4사단은 함양, 안의방면으로 진출하였다. 이들은 26일 전 차량을 동원하여 무주를 거쳐 진안-안의로 지향하는 한편, 일부 병력을 남원-함양으로 우회시키고 있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이 지역에 대한 방어배치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26일경 북한군의 진출이 확인되자, 임기응변으로 민기식, 오덕준, 김성은부대장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김성은 부대장이 부대본부를 안의 - 함양 간의 도로 좌측인 새미마을에 설치하기로 했다. 김부대장은 제1중대를 650밀리 박격포 3문과 함께 포진시킨 다음, 제2중대는 북쪽 500~600m 전방의 동서를 연결하는 능선일대에 배치했으며 수색소대는 그 좌측 고지에 전개시켰다. 북한군은 이미 주곡마을까지 진출하여 28일 오후3시경 공격을 전개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제2중대는 전 화력을 집중하여 20여 명을 사살하면서 이들을 물리쳤다. 이후 재차 수색대 진지를 공격하는 북한군의 공격을 연이어 격퇴했다. 그러나 이미 북한군이 함양 서남쪽 2km 지점까지 진출하였고, 계속된 전투로 병력들의 피로가 누적되자 병력 손실을 우려하여 산청 쪽으로 후퇴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권, 2008, 510-512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278-28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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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 |
|---|---|
| 주소 | 경남 함양군 면 보산리 산23-5 일대 |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보산로 411-5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의하면 함양 북쪽 4km 지점 속칭 새미마을 인근에서 북한군 대대규모와 접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효산마을 뒷산 전경
새미마을에서 백암산 방향으로 바라본 함양 김성은 부대 전투지
함양 김성은 부대 전투지 - 새미마을 입구
함양 김성은 부대 전투지 - 새미마을 전경
함양 김성은 부대 전투지 - 새미마을 입구 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