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구훈련소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
| 종류 | 산야 |
| 상태 | 멸실 / 당시 육군 제1훈련소라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1950년 8월 국군이 중앙훈련소본부의 통제하에 부족분의 신병을 양성하기 위해 대구에 제1훈련소를 창설하여 훈련시킨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낙동강방어작전 |
|---|---|
| 관련 조직 | 육군중앙훈련소 |
| 관련 인물 | 정일권, 이종찬 |
| 관련 내용 |
국군은 북한군의 남침 지후 많은 병력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인사지원을 담당하는 국방부 및 각 군 관련기관들이 노력을 집중였다. 그러나 체계적인 계획에 의한 충원에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국방부는 우선 인사관리 목표를 필요한 병력을 적시에 충당하는데 두었으나,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한 소요병력의 판단과 대책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병력 보충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방부는 각 지역 방위임무와 병력 확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지역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보충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즉,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 등 4개 지역에 병력확충을 위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제1훈련소를 대구에 설치하였다. 그 외에도 제2훈련소는 부산, 제3훈련소는 구포, 제5훈련소는 제주, 제6훈련소는 삼랑진, 제7훈련소는 진해에 각각 설치하였다.편성관구는 전시체제하의 병력 충원 및 후방 전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편성되었으며, 특히 신병보충에 역점을 두고 예비 및 지원부대를 보유하였다. 국군은 중앙훈련소 본부(이종찬 대령)의 통제하에 신병양성에 주력하였다. 대구의 제1훈련소는 여 1950년 8월중 제3훈련소와 함께 창설되었다. 이 훈련소는 수용병력이 5-6천명이며, 1-2주간의 훈련을 실시하였다. 9월부터는 하사관교육대를 별도로 설치하고 우수병사를 선발하여 화기별 전문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2008, 52-57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4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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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시 산격동 |
|---|---|
| 주소 | 대구 북구 산격 1동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의하면, 6·25전쟁 직후 대한민국 국방부가 대구에 제1훈련소를 설치하여 신병을 교육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대구 훈련소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 장병들
경대교 측면
경대교 전경
경대교 다리 밑
대구 육군 제1훈련소 북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