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덕 남방 207 - 181고지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원형이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국군 제3사단 제22연대가 항공기의 지원 하에 대대적인 역습을 전개하여 탈환하고, 그후 수차례의 적의 역습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울진 전투, 포항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3사단, 북한군 제5사단 |
| 관련 인물 | 이준식, 마상철 |
| 관련 내용 |
국군 제3사단은 1950년 7월 26일 강구를 방어하는 데 유리한 중요 지형이자 영덕 탈환을 위한 공격의 발판이 되는 207고지 - 181고지를 확보하였다. 유승렬 장군의 후임 사단장인 이준식 준장은 27일부터 양일 간에 걸친 유엔 해·공군의 해상 및 공중 지원으로 북한군의 전력이 크게 약화되자 영덕 탈환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양측은 이후 220고지 - 180고지를 놓고 격렬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제3사단은 8월 5일 밤 적의 공격을 받고 진내전까지 전개하였으나, 시간이 경과할수록 지휘계통이 마비되어 전세는 이미 기울어 방어선 일각이 붕괴되었다. 제3사단장은 207고지 - 181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비교적 손실이 적은 제22연대를 투입했다. 연대는 유엔 해군과 공군의 지원 아래 반격을 개시했으나 치열한 근접전으로 병력 손실만 증가될 뿐 목표탈환에 실패하였다. 이어 야간공격으로 전환한 제22연대장은 19시 30분 미 제40전투비행대대 전폭기편대의 공중공격 직후 공격을 감행해 마침내 목표를 점령하였고, 이어진 적의 수차례에 걸친 역습을 격퇴시켰다. 이날의 전투는 특히 181고지 공방전이 치열해 쌍방 모두 많은 병력손실이 있었다. 제22연대가 207고지 - 181고지 선을 다시 확보하자, 제3사단장은 재편성을 완료한 제23연대를 지곡동 - 151고지에 배치해 적의 측방공격에 대비하였다. 제3사단은 오십천을 사이에 두고 좌측과 우측에 각각 1개 연대씩을 배치하였으나 여전히 사단 방어 중점은 207고지 - 181고지에 있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2008, 402-403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271-27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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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
|---|---|
| 주소 | 경북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산59번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국군 제3사단이 1950년 7월 16일부터 8월 6일까지 영덕 북방의 영해 207-181고지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의 공격을 방어하여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














삼거리 일대의 모습
영덕 시내에서 본 207고지
영덕 북쪽의 능선
207고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