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유곡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모습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0년 7월 23일경 국군 제6사단이 북한군 제1사단과 전투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조령 전투, 함창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6사단, 북한군 제1사단, 북한군 제13사단 |
| 관련 인물 | 김종오, 최광 |
| 관련 내용 |
1950년 7월 23일 북한군 제1사단은 문경 - 유곡간 도로로 전차 7대를 선두로 하여 연대규모로써 진남교 부근에서 도하공격을 개시하였다. 국군 제6사단 제2연대는 전차 3대와 155㎜ 곡사포 및 대전차포중대까지 동원하여 화력을 집중하였지만 방어선의 일각이 돌파되고 말았다. 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다시 유곡리를 중심으로 반월형 진지를 편성하는 한편 이 일대의 중요한 감제고지를 탈환할 것을 결심하고 다음날 제7·제2연대로 반격을 개시하였다. 제2연대는 7시간의 연속적인 공격으로 마침내 조봉을 탈환하였으나 7연대는 유곡 부근의 제19연대가 적의 역공을 받기 시작하였으므로 서측방이 노출되어 다시 반전하였다. 제19연대는 격전을 수행하다가 유엔 공군 2개 편대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북한군 제2군단장은 그 동안 제1사단의 진출이 부진하자 25일 제13사단마저 동북으로 이동시켜 정면 돌파를 개시하였다. 이에 국군 제6사단은 사단 서측방의 제1연대를 유곡으로 이동시켜 유곡 - 점촌 축선의 방어력을 강화하였다. 사단은 가용한 전 화력과 유엔 공군의 지원을 받아 맞서 제19연대가 대전차특공대로써 선두전차 4대를 육탄공격하면서 방어하였고, 제2연대도 조봉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중앙의 수도 사단 제1연대가 격전 끝에 유곡을 상실하고 말았다. 27일 영강 동쪽으로 추진한 제1사단은 군단명령에 따라 제6사단 정면의 적을 포위하기 위해 반격에 나서 오정산 일대를 탈환함으로써 적의 퇴로를 위협하였다. 북한군 제1사단은 퇴로차단의 위협을 받아 일시에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국군 제6사단도 유곡 남쪽에서 전면적인 반격에 나서 제19연대가 신기리와 유곡 일대를 탈환하였으며 동시에 제7연대와 제2연대도 조봉 일대의 적을 완전히 격퇴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2008, 314-324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265-2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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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문경군 호서남면 유곡리 |
|---|---|
| 주소 | 경북 문경시 시 유곡동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의하면, 1950년 7월 23일경 북한군 제2군단 제1사단의 유곡리 진출을 국군 제6사단이 전선을 정비 방어전투를 전개하였음이 확인된다. |














유곡리 부근 전투, 1950. 7. 23.~27『.( 6·25전쟁사』4, 316쪽)
유곡동 전경(동쪽)
유곡동 앞 도로
유곡동 전경(서쪽)
유곡동에서 바라본 상주 방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