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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구 비행장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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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가수호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후방지원작전
종류 기타(비행장)
상태 원형보존 / 군관련 시설로 관리되어 전쟁 당시의 원형이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정의 전쟁 당시 한국공군과 미 극동공군사령부가 근접지원 및 항공지원 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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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근접항공지원작전, 후방차단작전, F-51 인수
관련 조직 공군본부, 미 제5공군 
관련 인물 이근석, 김정렬
관련 내용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선이 남쪽으로 이동하자, 공군본부는 수원기지의 T-6 훈련기를 대전기지로 이동하였다. 7월 2일 대구기지에 미국이 지원한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가 도착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전기지의 T-6건국기 6대를 대구기지로 이동시켰다. 공군본부는 수원을 거쳐 대전으로 이동하여 주둔하다가 북한 지상군이 남진을 계속하자 7월 13일 대구로 이동하였다.

6월 25일 전쟁발발 당시 북한군의 T-34전차는 우리 육군이 보유하던 무기나 공군의 T-6건국기와 L-형 정찰용 항공기로도 파괴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김정렬 공군 총참모장은 북한군의 전차를 격파하고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전투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이 대통령은 무쵸 주한미대사를 통해 미 극동군사령부와 국무부에 전투기 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10대의 F-51(무스탕) 전투기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근석 대령을 비롯한 10명의 조종사를 선발하였고, 이들은 6월 26일 일본 규슈에 위치한 이다즈케 기지에 도착하여 훈련을 받았다. 7월 1일 오후에 이근석 대령 등은 전황이 불리하므로 귀국을 요청하여 인수조종사들은 7월 2일 오전 10대의 F-51전투기를 조종하여 대구비행장에 착륙하였다. 대구기지에 도착한 이근석 대령 등 10명의 조종사들은 당시 북한군이 안양 - 시흥 부근에 이르는 등 전황의 긴박함에 따라 조종사의 전투훈련도 실시하지 못한 채 7월 3일 한국공군 사상 최초로 태극표식을 한 F-51전투기로 역사적인 첫 출격을 하였다. 이후 F-51기의 모기지로 활용된 대구비행장은 초기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출격에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참고 문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3, 2006, 753-757쪽. 공군본부, 『 6.25전쟁 증언록』,2002, 280-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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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
주소 대구 동구 검사동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6·25전쟁사』3권에 의하면, 대구 비행장이 대한민국 공군과 미극동공군사령부가 근접지원 및 항공지원 작전을 전개한 중요한 공군 비행장이었으며 현재도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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