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오산 갈곶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
| 종류 | 산야 |
| 상태 | 멸실 /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서 있어 고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국군 제17연대가 죽미령의 스미스부대 방어진지를 통과한 북한군 제4사단의 진출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오산 죽미령 전투||1950 평택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24사단 스미스특수임무부대, 국군 제17연대 |
| 관련 인물 | 정일권 소장, 스미스 중령, 라이트 중령, 김희준 중령 |
| 관련 내용 |
1950년 7월 5일 미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오산 죽미령에서 전투를 수행할 때 그 남쪽 갈곶리 일대에는 국군 제17연대가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스미스부대를 공격했던 북한군 제3사단이 전차를 앞세우고 오전 10시 경에 전초진지 전방에 나타나자 국군 제17연대 1대대 2개 중대가 일제히 사격을 가함으로써 갈곶리 전투가 개시되었다. 그러나 국군의 사격은 북한군 전차에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군 전차의 사격으로 대전차 특공조 요원들이 피해를 입었다. 제17연대는 다시 북한군의 보병부대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전투태세를 강화한 후 유유히 접근하는 북한군과 교전하였다. 그러나 제17연대는 북한군 전차의 우회기동과 뒤따르는 북한군 보병부대의 강력한 공격에 부딪힌 상황에서 실탄마저 부족하게 되었다. 연대장은 더 이상의 방어가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오후 5시에 철수명령을 하달하였다. 국군 제17연대는 북한군의 포격을 뚫고 천안으로 철수하여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았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3, 2005, 358-367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208-21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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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갈곶리 일대 |
|---|---|
| 주소 | 경기 오산시 갈곶동 807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3권을 통해 1950년 7월 5일 오산 갈곶리에서 전투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6·25전쟁사』에 나타난 전선 배치도를 토대로 전투지의 위치를 비정할 수 있었다. |














평택 방면으로 본 1번(경부) 국도
방어진지를 세운 곳으로 보이는 갈곶리 고지(벽산아파트 주변)
오산 시내 방면으로 본 1번(경부) 국도
오산 시내 방면으로 본 갈곶리 고지와 1번 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