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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내촌 전투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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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가수호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초기작전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내촌 전투지는 주변 도로공사로 인해 그 원형이 완전히 변형되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의 1950년 6월 26일 야간부터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육사 생도대대가 북한군 제3사단의 공격을 방어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50 포천 전투, 태릉 전투
관련 조직 육사 생도대대 
관련 인물
관련 내용 북한의 남침으로 수도서울이 위기에 처하자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도 전투에 투입되었다. 육사 생도대대는 육군본부의 명령은 받고, 내촌 372고지에서 철야 경계태세 하에 진지작업을 하였다. 대대는 교육을 받은 대로 주진지와 예비진지 및 보조진지까지 구축하면서 사계청소와 위장을 철저히 하였다. 일부 병력은 진지 전방지역에 지뢰를 매설하기도 했다. 포천방면으로 남침한 북한군 제3사단은 26일부터 일부병력을 투입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생도대대는 1950년 6월 26일 북한군의 공격을 받자 사격을 집중하면서 적을 저지하였다. 북한군은 박격포와 대전차포 및 기관총의 엄호를 받으면서 내리 서남쪽의 개활지를 횡단하여 공격하였다. 북한군은 312고지 부근에서 후퇴병력을 수습하면서 재차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대대 동측 제3중대와 서측의 제1중대 진지에서는 수류탄 투척을 하면서 30여분 동안 격전을 치뤘고, 제1중대의 서쪽 진지가 무너지자 육박전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생도대대는 적과 접촉한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대대장의 판단 하에 오후 7시부터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제2중대와 제3중대는 동측의 47번 도로를 따라 대체로 무난히 이동하였다. 그러나 서측의 제1중대는 진지를 떠나면서 일부병력이 분산되어 광릉 - 용암리를 거쳐 퇴계원으로 내려오는 등 철수 간 혼선을 빚음으로써 교전시보다도 더욱 많은 병력손실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생도대대는 제7사단 지역에서의 작전의 종지부를 찍고 26일 밤 9시 학교본부로 철수하였다.
참고 문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2005, 387-388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120-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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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우금리
주소 경기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산89-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6·25전쟁사』2권에 의하면, 1950년 6월 26일 육사 생도대대가 내촌일대에서 방어 진지를 편성하고 있던 중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 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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