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소요산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소요산 전투지는 주변 도로공사로 인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
| 정의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시 국군 제1연대가 북한군 제4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동두천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7사단 제1연대 |
| 관련 인물 | 함준호 대령, 유재흥 대령 |
| 관련 내용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 시 국군 제1연대(함준호 대령)는 동두천 전방 소요산 일대에 방어선을 정하고, 북한군 제4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고자 했다. 제2대대는 소요산 능선에 병력을 배치하여 방어준비를 하던 중 적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 8중대가 하천 서쪽으로 공격하는 적을 격퇴하였으며, 제2대대는 연대로부터 병력을 증원받아 분산된 병력을 수습하고 본부요원까지 총동원하여 방어진지를 고수하였다. 이 무렵 제1대대는 잔류 병력을 동두천으로 이동시키고 제3대대 병력을 봉암리로 투입하였다. 하지만 제1대대가 동두천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시내까지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져 금융조합, 우편국, 역사 등이 파괴되고, 전선의 제2대대 진지에서는 치열한 교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제1대대는 장비를 제2대대에 인계해주고 마차산 9부 능선에 병력을 배치하였다. 북한군은 25일 정오, 전차를 앞세우고 3번 도로를 따라 다시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동두천 북쪽 2Km지점의 창말고개에서 국군의 포격에 전차 1대를 잃고 초성리 쪽으로 퇴각하였다. 국군 제1연대는 북한군 제4사단 예하부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였으나, 점차 탄약과 보급이 고갈되어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2005, 360-362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113-11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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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상봉암리 |
|---|---|
| 주소 |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3-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2권에 의하면,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1연대는 북한군 제4사단 예하부대가 동두천 방면으로 지향하여 접근하자 소요산-마차산 진지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전투를 수행하였으며, 연대는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고 덕정을 거쳐 의정부로 철수하였음이 확인된다. |














소요산 입구의 경원가도(3번 국도)
소요산 진입로
소요산
경원가도에서 본 소요산
소요산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