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사직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사직리 전투지 주변 고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
| 정의 |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9연대 2대대가 남진하려는 북한군 제3사단 예하부대의 남침을 받고 방어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포천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9연대 제2대대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40분을 전후하여 공격준비사격을 시작하였다. 북한군은 국군의 전방경계진지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군의 방어진지를 집중적으로 포격하였다. 국군은 기관총진지를 제외한 모든 교통호가 붕괴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였다.북한군의 남침시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추동리 - 사직리 일대에서 경계 중에 북한군 제3사단 예하부대의 공격을 받았다. 제2대대는 6중대와 7중대를 전방 경계지대에 배치하고 있었으나 전투가 여의치 않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예비부대까지 투입하였다. 국군의 방어체계를 화력으로 무너뜨린 북한군 제3사단은 공격준비사격을 연신하면서 전방 2개 중대의 방어전면으로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하였다. 양중교를 통과한 북한군 전차 3대가 양문교 부근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유린하였다. 중대는 43번 도로를 적에게 빼앗기고 823고지 서쪽 능선으로 후퇴하여 분산병력을 수습하였다. 사직리 일대를 장악한 북한군은 국군 방어진지 후방의 5Km 지역까지 포격을 집중하면서 공격을 가해왔다. 국군의 방어진지는 적의 포격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장자동으로 집결한 제6중대는 삼차로에서부터 287고지를 연하는 선에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하였으나, 재차 북한군 전차의 공격을 받고 분산철수하고 말았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2005, 349-350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113-11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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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사직리 |
|---|---|
| 주소 | 경기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 산288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2권에 의하면,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9연대 제2대대는 추동리-사직리 일대의 방어진지 경계 중 제3사단 예하부대의 공격을 받고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 방어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














사직리 전투지 주변(이동 방향) 도로
사직리 전투지 좌측 고지
사직리 전투지 주변 도로 - 사직삼거리(일동 방향)
사직리 전투지 우측 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