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갑곶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갑곶 전투지는 전쟁 당시의 원형이 완전히 변형되었다. |
| 정의 | 1950년 6월 25일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예하 기갑연대 도보대대와 보국대대 병력이 갑곶 정면에서 북한군의 도하 지연을 위한 전투를 벌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강화 전투 |
|---|---|
| 관련 조직 | 김포지구전투사령부, 북한군 제6사단 포병부대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자 육군본부는 김포가도상의 북한군 진출을 위해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육본은 계인주 남산학교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김포지구에 있는 모든 병력을 통합 지휘하도록 하였다. 계인주 사령관은 강화도에서 김포 방면으로 도하하는 적에 대비하여 부대 편성이 끝나는 대로 갑곶과 용수리 대안 일대에 기갑연대 도보대대와 보국대대 병력을 배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6월 26일 야간 북한군 제6사단은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을 갑곶과 용진포 일대배치한 후 김포반도로 도하할 기도를 보였다. 도하를 감행한 북한군은 이 곳을 방어하고 있던 국군 도보대대와 보국대대 진지를 침투·공격하였고, 양측간에는 치열한 격전이 전개되었다. 게다가 갑곶에서 도하를 노린 북한군의 일부가 염하수로를 건너 180고지 서쪽 하안으로 침투함으로써 방어선의 일부가 돌파되었다. 북한군이 진지 측면으로 침투하자 도보대대 병력들이 분산되기 시작하였고, 김포 일대의 방어진지가 돌파되면서 방어 병력들은 김포읍내로 철수하고 말았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서울인쇄, 2005, 247-248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 신오성, 1995, 157-15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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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20 |
|---|---|
| 주소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2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2권에 1950년 6월 25일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예하 기갑연대 도보대대와 보국대대가 갑곶과 용진포에서 도하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사격을 집중하여 저지하려 하였으나 방어선이 돌파되면서 분산 철수하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














갑곶돈대에서 바라본 김포반도
갑곶돈대
북한군이 도하했던 갑곶(현 강화역사관) 전경
갑곶에서 바라본 김포반도(좌측은 문수산과 강화대교)
갑곶돈대에서 본 염화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