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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병기 생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문화운동
종류 가옥
상태 복원 / 고패 형식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고방채·모정으로 구성되었으며, 입구에 세워졌던 3칸의 행랑채는 철거되었다. 모정 앞쪽에는 두 개의 작은 못을 파놓았으며, 뒤쪽에는 일꾼을 위한 각각 1칸씩의 방과 부엌으로 된 외딴채가 있다.
정의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된 국문학자이자 시조시인인 이병기가 태어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42.10.1 조선어학회사건
관련 조직 조선어학회 
관련 인물
관련 내용 이병기(李秉岐, 1891~1968)는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출신으로, 호는 가람(嘉藍)이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고문헌 수집과 시조 연구에 몰두하였다.

1930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1935년에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1939년에 『가람시조집』을 발간하고, 『문장』창간호에 「한중록주해」를 발표하는 등 고전연구에 정진하였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되어 함흥형무소에서 l년 가까이 수감되어 고문을 받았다. 1943년 9월 함흥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귀향하여 농사와 고문헌연구에 몰두했다.

광복 후에는 상경하여 미군정청 편찬과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고 각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했다.

1948년 『의유당일기』와 『근조내간집』 등을 역주·간행하였고, 1954년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백철과 공저로 『국문학전사』를 발간하여 국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시조시인으로서 현대적인 시풍을 확립하였고 국문학자로서는 수많은 고전을 발굴하고 주해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1927년부터 광복이 될 때까지 14년간 조선어학회에서 언어문화를 지키고 닦은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이병기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8, 1976, 501·9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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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573
주소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 8권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병기 공적조서」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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