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모슬포 포로수용소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훼손 / 포로수용소 원형은 멸실되고 건물의 일부 벽체만이 남아있다. |
| 정의 | 1951년 2월에 설치된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수용한계에 달하면서 같은 해 6월 중공군 포로 5,600명이 모슬포항으로 들어오면서 설치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중공군 참전 |
|---|---|
| 관련 조직 | 거제도 포로수용소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모슬포 포로수용소는 1951년 2월 설치된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북한군 15만 명, 중 공군 2만 명 등 17만 명에 이르러 수용한계에 달하면서 같은 해 6월 중공군 포로 5,600명이 LST상륙함에 태워져 모슬포항으로 들어오면서 설치됐다. 수용소의 정식 명칭은‘제20수용소’로 물이 나는 곳을 고려하여 선정하여 산이수동 인근에 설치하였다. 이곳으로 이송된 중공군 포로들은 산이수동과 정뜨르 비행장 등 3곳에 분산돼 수용됐다. 모슬포 포로수용소에서는 한때 중공군 포로들끼리 유혈 살상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반공·친공으로 나뉘어져 서로 빈번하게 살상하였다. 전쟁 당시 중공군들을 수용했던 포로수용소 건물은 사라지고 현재 그 터와 흔적은 산이수동 해안도로 맞은편 마늘밭에 벽체만 남아 있어 거의 방치되고 있다. 길이 20m, 높이 2m 정도의 석축벽에 창틀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모슬포 중공군 포로수용소는 전쟁이 발발하게 된 이념과 사상의 대립을 생생히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특히 북한군이 아닌 순수하게 중공군 포로들만 수용된 수용소의 특성을 볼 때 모슬포 포로수용소는 냉전시대의 산물이자 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역사의 산교육장이나 다름 없다. |
| 참고 문헌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포로 연구』, 1997, 69-76쪽. 「중공군 포로수용소 벽체만 남아」,《 제주일보》, 2008년 10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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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
|---|---|
| 주소 | 제주 서귀포시 상모리(산이수동) 54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 포로연구』및《제주일보》에 의하면, 6·25전쟁 시 1952년 6월 제주 모슬포 산이수동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여 거제도포로수용소로부터 이송된 중공군 포로들을 수용 관리하였음이 확인된다. |














현재 남아 있는 모슬포 포로수용소 좌측 벽체
모슬포 포로수용소 원경
현재 남아있는 모슬포 포로수용소 벽체 후면
현재 남아있는 모슬포 포로수용소 벽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