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애국인사 납북로 - 미아리고개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북진반격작전 |
| 종류 | 거리/산야 |
| 상태 | 변형 / 당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표석, 사적비 등이 설치되어 있다. |
| 정의 |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와 후퇴할 때 수많은 애국인사를 북한으로 피납했던 길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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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미아리고개는 북한군이 수많은 애국인사를 북한으로 납치했던 주요 통로였다. 전쟁시기 납북자 규모는 최대 1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한국전쟁납북사건 자료원에서 납북자의 이름과 주소, 생사확인 등을 활발하게 조사하고 있다. 국회의원, 교수, 문인, 종교인, 기술자 등은 이미 1950년 6월 하순부터 납북되기 시작했다. 미아리고개는 수많은 납북자들이 철사 줄에 매여 북에 끌려 감으로써‘단장’의 한이 서린 지역이 되었다. 1956년 반야월은‘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발표하여 전후 국민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미아리고개 공원 사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2001년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에서‘납북길 따라 걷기’행사를 개최하였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에 납북자진상규명위원회가 납북 관련 사실들을 조사하고 있다. 미아리고개는 개운산 중턱으로 국군이 진지를 구축하여 북한군과 대항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
| 참고 문헌 |
『평화신문』, 1952년 1월 8일,「 전쟁 중 피납치자는 대략 12만여 명」. 중앙일보사 편,『 민족의 증언』2, 중앙일보사, 1983, 154-157쪽. 『데일리NK』, 2005년 6월 20일,「 6·25 납북가족협의회‘납북길 따라 걷기’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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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
|---|---|
| 주소 | 서울 성북구 돈암1동 미아리고개 공원 앞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민족의 증언』2, 154-157쪽과 『평화신문』1952년 1월 8일자 기사를 토대로 미아리 고개임을 알 수 있으며, 성북구청에서 1996년 ‘미아리고개의 유래’표지석을 설치했다. |














미아리고개(돈암동 방향)
미아리고개(길음동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