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쌍봉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산야 |
| 상태 | |
| 정의 | 1919년 4월 1일 장안·우정 일대의 연쇄적 봉화시위와 4월 3일 장안·우정면 일대 면민들의 연합만세시위가 전개된 장소이다.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차희식(車喜植), 차병한(車炳漢),차인범(車仁範) |
| 관련 내용 |
쌍봉산은 장안면과 우정면 사이에 있는 해발 117.7m의 산으로, 4월 1일 봉화시위와 4월 3일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① 우정면·장안면 지역 봉화시위 : 4월 1일 밤 7시 수촌리 개죽산의 봉화를 신호로 조암리 쌍봉산, 팔탄면 천덕산, 향남면 가재리 당재봉, 장안면 석포리 무봉산, 어은리 남산, 우정면 이화리 보금산, 장자터 봉화산, 운평리 성신재, 매향리 망원대 등 각 산봉우리에서 일제히 봉화가 치솟았다. 팔탄면 고주리 천덕산으로 발안주재소에 대기하던 일본 수비대가 총을 쏘아대며 올라왔다. 고주리 주민들은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도 어둠 속에서 산을 내려와야 했으나 다른 지역은 자정 너머까지 산 위에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봉화시위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② 쌍봉산 만세시위 우정면, 장안면의 봉화시위가 있은 후, 4월 3일 쌍봉의 우측 봉우리(삼괴종합고등학교 뒷산)에서 양 면의 면민들이 장안면사무소를 습격한 후 이곳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1천여 명의 시위대는 이 곳에서 우정면사무소를 향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우정면사무소를 습격하였고, 이어 화수리의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일경 가와바다를 처단하였다. |
| 참고 문헌 |
「김현묵 등 27인 판결문」, 1920년 12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차인범 조서」·「차병한 조서」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20, 1994, 3∼6·8∼11쪽. 「예심종결결정」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21, 1995, 72∼7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2, 1971, 160∼162쪽.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남부 독립운동사적지』, 2009, 126~127쪽. 화성시사편찬위원회, 『화성시사』 1, 화성시, 2005, 569∼580쪽. 화성시·수원대학교박물관,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 2003.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조암리-001(임야원도_0001)」, 1918.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조암리 |
|---|---|
| 주소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산56-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예심종결결정」 및 「김현묵 등 27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함께 쌍봉산의 위치에 대한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와『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에서 비정하고 있는 위치를 따랐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