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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규홍의병 전투지 - 오도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산야
상태 원형보존 / 오도산 능선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정의 1916년 의병장 이규홍이 일제 경찰과 항쟁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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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내용 이규홍(李圭弘, 1881~1929)은 전북 익산군 관동(현, 팔봉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의병에 참가하였다. 이어1906년 윤 4월 최익현의 무성서원 의거에 참여하고자 의병을 모집하여 11월에 출발하였으나, 최익현이 의병을 해산시킴에 재기를 다짐하고 의병을 해산하였다.

이규홍은 1907년 9월에 의병을 다시 모집하고, 자신의 곡물과 전토를 매각하여 군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자신이 대장이 되어 부장에 박이환, 참모장에 문형모, 참모에는 송치옥·김봉우·안종문 등을 임명하였다. 이규홍 의병부대는 1907년 11월 고산의 가금리에서 일본군과의 첫 전투를 벌였다. 그는 이후에도 진안·장수·용담 등지의 산간을 이동하면서 일본군과 항전하여 전과를 세웠다. 그러나 1908년 4월에 대전의 식장산에서 의병을 해산하고 후일을 도모하였다.

1910년 국망 후에도 이규홍은 임병찬과 함께 독립의군부에 참가하였다. 일제는 그를 체포하려고 현상금까지 내걸고 검거에 혈안이 되었다. 그는 1916년 공주 사한리(현, 대전시 동구 이사동)에 사는 친우인 송덕재의 다락방에 은신하였다가 1917년 10월 이를 알아챈 일제 경찰의 급습을 받았다. 그는 사한리 뒷산의 오도산성에 올라 자신이 틈틈이 쌓은 석성을 의지하여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다. 그는 부상을 입었으나 탈출에 성공하였다.

1918년 11월, 이규홍은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갔으며, 만주의 북로군정서 연성소에서 김좌진을 만나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24년 서울에서 체포되어 경무청에서 4개월간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李圭弘,『梧下日記』.
李康五,「義兵大將李圭弘의 抗日鬪爭」,『군사』6,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1983, 224-225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공주 사한리 뒷산
주소 대전 동구 이사동 산 17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이규홍의『오하일기』에 관련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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