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길직교회 3·1운동 만세시위 모의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교회 터는 그대로이나 교회 건물은 신축되었다. |
| 정의 | 1919년 3월 18일 일어난 강화의 만세운동을 모의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강화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유봉진(劉鳳鎭)/이진형(李鎭亨)/조종열(趙鍾烈)/장흥환(張興煥)/장윤백(張允伯)/장명순(張明淳)/조종환(趙鍾桓)/장동원(張東元)/장상용(張相用)/장삼수(張三壽)/황유부(黃有富)/황도문(黃道文)/염성오(廉成五)/유희철(劉熙哲)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9일 오후 3시경 길직리 예수교회당에서 길직리의 조종환(趙鍾桓)·장명순(張明淳)·장동원(張東元)·장상용(張相用)·장삼수(張三壽)·장흥환(張興煥) 등과 선두리의 황유부(黃有富)·황도문(黃道文)·염성오(廉成五)·유희철(劉熙哲), 온수리의 유봉진(劉鳳鎭), 상방리의 이진형(李鎭亨) 목사 등이 회합하였다. 이들은 길직교회와 선두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온 황도문과 조종환은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에 관한 상황을 전하고 강화에서도 만세운동을 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돌아오는 장날 중 여건이 좋은 날을 정해 거사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여러 번의 협의를 통해 18일 장날을 거사일로 정했고,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
| 참고 문헌 |
大正8年刑第930號, 「유봉진 등 39명 판결문」,1919년 12월 18일 (CJA0000416)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335~343쪽. 강화사편찬위원회, 『증보강화사』, 1983, 286~287쪽. 이은용, 『강화중앙교회100년사』, 강화중앙교회, 2002, 232쪽. 강화군사편찬위원회, 『신편 강화사』 상, 강화군, 2003, 645쪽.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경기도편찬위원회, 1995, 476~496쪽. 김성민, 「강화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 근현대사 연구』22, 한국근현대사학회, 2002.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
|---|---|
|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장촌길 12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유봉진 등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은용(강화기독교연구회 회장)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