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강경 옥녀봉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공원 조성 등으로 일부 변형되어 있으며 기념비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10·20일 두 차례에 걸쳐 엄창섭·송재기 등의 주도로 논산군민들이 3·1운동 만세시위를 시작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엄창섭(嚴昌燮)/고상준(高相俊)/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이근국(李根國)/서삼종(徐三鍾)/송재기(宋在紀)/이근석(李根奭)/이봉세(李鳳世)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10일과 20일에 전개된 강경 3·1운동 만세시위는 강경면에 있는 옥녀봉에서 시작되었다. 3월 10일 시위는 군산 영명학교 학생인 강금옥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과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3월 9일 교내에서 엄창섭·추성배 등과 함께 태극기 200여 매를 제작했다. 이들은 3월 10일 태극기를 강경면 옥녀봉으로 운반하고, 오후 3시경 독립만세를 부른 뒤 강경 윗시장으로 내려와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함께 본정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3월 20일에는 송재기·이근석·이봉세·이근오 등이 태극기 300여 매를 제작하여 오후 5시 경 옥녀봉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들는 옥녀봉을 떠나 윗시장으로 내려와서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서정(西町)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 만세시위로 엄창섭 등 14명이 태형 90도에서 징역 2년형, 송재기 등 4명이 징역 8월에서 1년의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1, 1136~1137·1168~1170쪽. 「송재기 등 4인 판결문」, 1919년 5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엄창성 등 판결문」, 1919년 6월 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진호,『충남지방 3·1운동 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2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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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 북정 |
|---|---|
| 주소 | 충남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성재기 등 4인 판결문」과「엄창섭 등 판결문」에 강경 옥녀봉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총독부 발행 강경지도(1916, 1:50,000)에 옥녀봉이 표기되어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옥녀봉이 표기된 강경지도(1916년)
옥녀봉공원에 세워진 ‘강경항일독립만세운동기념비’
옥녀봉 - 현 옥녀봉공원
옥녀봉에서 본 강경읍내
옥녀봉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