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포항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현재 속초시 대포항이다. 대포리경찰관주재소는 없어지고, 2021년 대포만세운동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5일 도천면민과 강현면 주민들이 연합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석범(李錫範)/이국범(李國範)/이능렬(李能烈)/김영경(金英經)/장세환(張世煥)/박사집(朴士集)/이종순(李鍾淳) |
| 관련 내용 |
양양군 도천면과 강현면(降峴面) 주민들의 합동 만세시위는 원래 도천면 중도문리의 이석범이 이국범과 이능렬을 내세워 추진하였다. 이에 도천면은 김영경, 강현면은 장세환이 각각 책임을 맡아 조직망을 넓혔다. 그런데 이석범이 임천리에서 4월 4일 체포당하였다. 그러나 도천면과 강현면 주민들은 4월 5일 강현면 물치 장날에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각 마을마다 책임자를 두어 태극기를 만들었다. 도천면에서는 4월 5일 중도문리 이종황(李鍾黃) 집에서 열린 친목계를 통해 중도문리 일대는 이국범과 김영경, 대포리는 박사집, 부월리는 이종순이 맡아 계획대로 추진하였다. 4월 5일 강현면 군중은 물치장터로 모였고, 도천면 군중은 경찰주재소가 있는 대포리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강현면사무소와 물치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던 군중은 대포리로 향하여 도천면 군중과 합세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대포리 경찰주재소를 공격하여 경찰의 사죄를 받아냈다. 6일에는 강현면과 도천면의 군중이 양양면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이 날에는 상황이 달랐다.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산되어 항일의 기세가 높아지자, 일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증원부대를 파견하였다. 4월 5일 원산항에 도착한 1개 중대가 제20사단 제79연대에 편입되어 강릉으로 왔으며, 그 중 1개 소대가 양양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양양 입구인 연창에 강현면과 도천면 군중이 도착했을 때 일본 군대와 맞서게 되었다. 그러나 군중은 제지하는 군대를 밀치고 양양으로 들어가 양양경찰서에 이르렀다. 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경찰서장은 일본은 물러갈 것이니 만세만 부르고 돌아가 달라고 애원하였다. 군중은 독립만세를 부른 후 자진 해산하였다. |
| 참고 문헌 |
조선총독부,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1918. 「이능렬 등 3인 판결문」, 1919년 6월 1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2, 1971, 616∼620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975∼976쪽. 최창희, 「江原道의 3·1運動」, 『江原道抗日獨立運動史』Ⅲ, 光復會 江原道支部, 1992, 377∼379쪽. 「일제 사과 받아낸 역사의 현장, 대포만세운동기념관 개관」, 『한겨레』, 2021년 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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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대포리 |
|---|---|
| 주소 | 강원도 속초시 대포동 426 대포만세운동기념관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능렬 등 3인 판결문」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도천면은 현재 속초시에 소속되어 있으며, 1918년 1:50,000 지도와 『한겨레』 신문 「일제 사과 받아낸 역사의 현장, 대포만세운동기념관 개관」 기사(2021.8.12.)를 통해 대포항과 경찰주재소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














대포항 3·1운동 만세시위지(2021년 촬영)
강현면 대포리 일대(「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1918)
대포항 3·1운동 만세시위지-대포만세운동기념관(2021년 촬영)
대포항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