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임피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당시의 장터는 상가와 주택으로 변모하였고, 시장은 도로변으로 옮겨 상설화되었다. |
| 정의 | 1919년 3월 29일 옥구군 임피면 면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29 옥구군 임피장터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진장권(陳狀權)/황봉규(黃鳳奎)/채만식(蔡萬植)/김석종(金錫宗)/최한풍(崔漢豊)/김홍렬(金洪烈)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29일 임피장터에서는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가 있었다. 임피장터에서의 만세시위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진장권(陳狀權)에 의해 계획되었는데, 그는 3월 25일 독립선언서 20매를 휴대하고 서울에서 내려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황봉규(黃鳳奎)를 만나 시위할 것을 결의하였다. 진장권은 채만식(蔡萬植)·김석종(金錫宗)·최한풍(崔漢豊)·김홍렬(金洪烈)·황봉규 등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 200매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위계획이 일경에 발각되어 체포되자, 진장권 등은 끌려가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시장에 있던 군중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계속하였고, 임피시장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로 진장권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
| 참고 문헌 |
「진장권 등 5인 판결문」, 1919년 6월 2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529쪽. 김양규, 『우리 고장의 항일운동사 - 옥구농민의 항일운동사』, 군산문화원, 2001, 145~14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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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 |
|---|---|
| 주소 | 전북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267-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진장권 등 5인 판결문」과 『독립운동사』 3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마을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장 바로 위쪽에는 당시 주재소로 쓰였던 동헌이 있으며 동헌은 현재 경로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














임피동헌 - 임피주재소 건물
임피장터 북측의 당시 주재소(동헌) 입구
옛 임피장터에서 바라 본 임피동헌 방향
옛 임피장터 입구
옛 임피장터 중심부
옛 임피장터 동편
옛 임피장터 서편
진장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