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방동화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민족주의독립운동 |
| 종류 | 집터 |
| 상태 | 멸실 / 현재 왕복 4차선 도로로 변해 있다. |
| 정의 | 1918년 10월 국권회복을 위하여 대규모 무장항일투쟁을 일으켰던 법정사 투쟁의 좌대장이었던 방동화가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8 제주도 법정사 무장항일투쟁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방동화(房東華, 이명 房河龍), 강창규(姜昌奎), 김연일(金蓮日, 金基寅) |
| 관련 내용 |
법정사 항일무장투쟁의 핵심인물로 좌대장 역할을 맡았던 방동화(房東華, 1887~1970)는 제주도 좌면 도순리에서 출생했다. 1909년 관음사 전각이 완공될 때 안봉려관(安逢廬觀) 등과 함께 제주불교 중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방동화는 당시 관음사에서 만난 강창규(姜昌奎)의 영향을 받고 1913년 4월 8일 경북 경주군 기림사에서 출가하였다. 여기서 방동화는 김연일(金蓮日)과 인연을 맺게 되며 강창규, 김연일과 함께 제주에서 항일운동을 일으킬 거사를 계획하게 된다. 방동화는 법정사에 거주하며 1918년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전개된 법정사 항일투쟁 당시 결사대를 조직, 운동의 총지휘자인 김연일을 보좌하는 좌대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거사 이후 방동화는 한달여 간 은신하다 체포되어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대한불교제주도교도회, 『교도책임자명부』, 1951. 「방동화 수형인명부」,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연일 등 46인 판결문」, 1919년 2월 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정구용 판결문」, 1923년 6월 2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형사사건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분국, 1918. 「수형인명부」,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 1918. 정긍식,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법적 고찰」, 무오년법정사항일운동의 항일운동사적위상 학술심포지엄, 2004. 김광식, 「법정사 항일운동의 재인식」,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5, 141~176쪽. 한금순, 「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한금순, 「근대 제주불교사 연구」,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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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좌면 도순리 371 |
|---|---|
| 주소 |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37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연일 등 46인 판결문」 및 「방동화 수형인명부」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수록되어 있다. |














방동화 생가 터 전경(2019)
방동화 생가 터 전경(2019)
방동화 생가 터 전경(2019)
방동화 생가 터 전경(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