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임천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새로운 임천면사무소 건물이 세워져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6일 박용화 등의 주도로 임천면 주민들이 3·1운동 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박용화(朴容和)/손병희(孫秉熙)/박성요(朴性堯)/황우경(黃宇京)/황금채(黃金彩)/문재동(文載東)/정판동(鄭判同)/최용철(崔容澈) |
| 관련 내용 |
부여 임천면에서는 1919년 3월 6일 박용화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는 천도교주 손병희가 서울에 독립운동을 전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손병희의 뜻을 따를 것을 결심하였다. 3월 6일 아침에 자신의 집에서 박성요·황우경·황금채·문재동·정판동(이명 정현동[鄭縣同])·최용철 등과 협의한 후 오전 7시경 임천 읍내에 나갔다. 이들은 읍내에 있는 군중들에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주장하였고, 이에 군중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군중들은 면사무소와 보통학교로 이동하면서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만세시위로 박용화 등 7명은 태 60도에서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김태호 등 판결문」, 1919년 4월 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1167∼1168쪽. 김진호,『충남지방 3·1운동 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2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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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
|---|---|
| 주소 |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23(군사리 314-17)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태호 등 판결문」에 임천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 면사무소를 확인하였으며, 현재도 면사무소가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임천 3ㆍ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임천면소재지)
임천면사무소
남부여농협 임천지점에서 본 임천면사무소
임천면사무소(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