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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산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상가가 세워져 일부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시장 구조는 유지하고 있다.
정의 1919년 4월 5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정산면 주민들이 3·1운동 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박상종(朴商鍾)/권흥규(權興圭)/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
관련 내용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장터에서는 4월 5일 홍범섭의 주도로 시장 군중들이 독립만세운동를 전개하였다. 그는 서울에서 독립선언문을 입수하여 백곡리로 귀향하여 임의재·윤석희·홍세표·박상종 등과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4월 5일 오후 3시경 서정리 장터의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돌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정산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고, 30명을 분견소로 강제로 연행하였다. 군중들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계속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특히 정산향교의 직원(直員) 권흥규는 “우리나라는 독립하여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니 빨리 물러가라”고 외쳤다. 두 차례의 총격이 있은 후에도 군중들은 계속하여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 때 헌병의 발포로 가슴에 총상을 입은 권흥규는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4월 6일 권흥규의 시신을 목면 안심리 자택으로 운구하는 과정에서 만세시위는 계속되었으며 광생리 등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다. 4월 7일에도 와촌리 등에서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일에 걸쳐 전개된 만세시위로 약 10여 명이 순국하고, 5명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0여 명의 인사들은 태형 70도에서 90도의 형벌을 당하였다.
참고 문헌 「홍범섭 등 판결문」, 1919년 6월 1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1185∼1186쪽.
김진호,『충남지방 3·1운동 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89∼93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주소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5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홍범섭 등 판결문」에 청양군 정산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 장터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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