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금마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도로가 새로 건설되고 일부 건물이 세워졌으나 현재에도 넓은 공터가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1일 민영갑 등의 주도로 홍성군 금마면 면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4.1 홍성군 금마면 독립만세시위/1919.4.2 홍성군 홍성장터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민영갑(閔永甲)/이재만(李載萬)/이원교(李元交)/최중삼(崔仲三)/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
| 관련 내용 |
홍성군 금마면에서는 1919년 4월 1일 민영갑(閔永甲) 등의 주도로 금마면 가산리의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연극을 보기 위해 이원교(李元交)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 모인 군중들과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고, 최중삼(崔仲三, 崔八龍)·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경 연극 공연 중 조한원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관중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만세를 외쳤다. 이때 공연장 가까이에서 독립만세 소리를 들은 주재소 경찰들이 즉시 출동하여 시위를 탄압하고 주도 인사들을 체포하였다. 이날 체포되지 않은 인사들은 4월 2일에 홍성장터로 나아가 또다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시위로 6명이 징역 6월에서 1년의 옥고를 치렀으며, 170여 명이 태형 30도에서 90도의 형벌을 받았다. |
| 참고 문헌 |
「민영갑 등 6인 판결문」, 1919년 4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민영갑 등 5인 판결문」, 1919년 5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1182~1184쪽. 김진호, 『충남지방 3·1운동 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36~38쪽. 김진호, 「홍성지역의 3·1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3,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4, 72~7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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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 |
|---|---|
| 주소 | 충남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 472-1 |
| 도로명 주소 |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충서로 2286 |
| 위치 고증 | 「민영갑 등 6인 판결문」·「민영갑 등 5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














금마 3·1운동 만세시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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