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벌교 아랫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멸실 / 장터가 있었던 자리는 주택가로 변하였다 |
| 정의 | 1919년 4월 9일 벌교 3·1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이팔사(二八社)/도란사(桃蘭社)/혜지사(蕙芝社) |
| 관련 인물 | 이병채/전평규/한흥조/안용갑/안응섭/김천근/안규진/안태섭 |
| 관련 내용 |
1919년 4월 3일 이병채(李秉埰)·전평규(田平奎) 등은 순천군 동초면(東草面) 신기리(新基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목적으로 도란사(桃蘭社)라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위친계 명목으로 이팔사(二八社)라는 시위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같은 달 8일 한흥조(韓興祚)의 집에서 위친계원들과 함께 벌교장터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서약서를 작성, 서명하는 한편 태극기를 만드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4월 9일 장좌리 벌교장터에서 전평규·안용갑·안응섭이 ‘대한독립기’를 흔들며 군중을 향해 독립만세를 소리쳐 부르며 시위를 주도하자, 동행한 대원들과 군중들이 호응하여 벌교시장은 순식간에 만세장터로 변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받은 일제의 헌병과 경찰들은 무력을 동원하여 군중을 해산시키고, 시위 주도자인 전평규를 포함하여 13명을 체포하였다. |
| 참고 문헌 |
「전인채 등 판결문」, 1919년 5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안용갑 판결문」, 1919년 6월 1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안응섭 판결문」, 1920년 11월 2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보성군사편찬위원회, 『보성군사』, 1995, 331~332쪽. 홍영기, 「벌교의 독립만세운동」, 『벌교100년』, 벌교100년사편찬위원회, 2007, 49~5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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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 장좌리 |
|---|---|
| 주소 |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좌리 638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전인채 등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고 마을주민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벌교 아랫장터 전경(2022년 촬영)
벌교 아랫장터 전경(2022년 촬영)
벌교 아랫장터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