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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벌교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멸실 / 당시 방앗간만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시장골목이나 장터는 대부분 주택가로 변하였다.
정의 1919년 4월 9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보성군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이팔사(二八社)/도란사(桃蘭社)/혜지사(蕙芝社) 
관련 인물 이병채/전평규/한흥조/안용갑/안응섭/안규진
관련 내용 1919년 4월 3일 이병채(李秉埰)·전평규(田平奎) 등은 순천군 동초면(東草面) 신기리(新基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목적으로 도란사(桃蘭社)라는 시위지도부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수십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위친계 명목으로 '이팔사(二八社)'라는 시위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같은 달 8일 한흥조(韓興祚)의 집에서 위친계원들과 함께 벌교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서약서를 작성·서명하는 한편 태극기를 만드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4월 9일 장좌리 벌교장터에서 전평규·안용갑·안응섭이 ‘대한독립기’를 흔들며 군중을 향해 독립만세를 소리쳐 부르며 시위를 주도하자 동행한 대원들과 군중들이 호응하여 벌교시장은 순식간에 만세장터로 변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받은 일제의 헌병과 경찰들은 무력을 동원하여 군중을 해산시키고, 시위 주도자인 전평규를 포함하여 14명을 체포하였다.

4월 14일 장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안응섭 안용갑 등이 다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1차 벌교 만세시위 당시 일제 헌병경찰의 검거를 모면한 이들이었다. 안응섭 등은 오전에 김천근의 집에 모여서 구체적인 방안을 계획한 후 오후 3시경 벌교시장으로 진출하여 대나무에 ‘대한독립기’라고 쓴 깃발과 ‘순천군 동초면 신기리 입(立)’이라고 쓴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미 5일 전에 만세시위가 있었던 터라 삼엄한 경계를 펼치며 시장을 순찰 중이던 일제의 헌병과 경찰들은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안응섭·안용갑·안규진 등 5명을 체포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벌교장터 만세시위로 약 신기리 주민 약 20명이 체포되었다. 이에 안태섭 등 신기리 주민 약 27명은 '혜지사(蕙芝社)'를 조직하여 구속자 및 구속자 가족을 후원하였으며, 그들이 출옥하자 성대한 환영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참고 문헌 「전인채 등 판결문」, 1919년 5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안용갑 판결문」, 1919년 6월 1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안응섭 판결문」, 1920년 11월 2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보성군사편찬위원회, 『보성군사』, 1995, 331~332쪽.
홍영기, 「벌교의 독립만세운동」, 『벌교100년』, 벌교100년사편찬위원회, 2007, 49~53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 장좌리
주소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좌리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전인채 등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장조사를 통해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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