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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남창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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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남창장터에는 현재에도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옛 주재소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남창의거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정의 1919년 4월 8일 울산군 남창리 주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재락/이수일/이수락/이희계/이쾌덕/이용락/이쾌경/윤두찬/고기룡
관련 내용 울산군 웅천면 석천리에 살고 있던 이재락(李在洛)은 고종(高宗)의 장례식에 참석차 서울에 갔다가 3·1운동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한편 서울 소식이 궁금하여 이를 듣기 위해 이재락의 석촌리 집을 방문한 신야리에 사는 이수일(李樹一)은 남창리에서도 만세운동이 필요함을 자각하였다. 이수일은 이수락(李壽洛)·이희계(李希季)·이쾌덕(李快德)·이용락(李龍洛)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4월 4~5일 양일에 걸쳐 울산 병영에서 대대적인 만세의거가 일어나자 이에 힘을 얻어 거사일을 4월 8일 남창리 장날로 정하고 동지를 규합하였다. 때마침 석천리 이쾌경(李快慶, 후의 이름 李一洛)이 찾아와 논의에 가담하였다. 4월 8일 중심인물 5명은 태극기를 몸에 품고 이른 아침 남창리 장터로 잠입하여 장꾼들이 모여드는 것을 기다리던 중 오후 4시경 재빨리 준비한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나누어 준 후 일제히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다. 수백 명의 장꾼들과 상인들이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일본 군경은 크게 놀라 공포를 발사하면서 중심인물 이수락·이쾌덕·이회계·이쾌경을 검거하였다. 이용락은 피신하여 윤두찬(尹斗讚)의 포목상점으로 달려가 광목 4자를 얻어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써서 장대에 달아들고 나왔다. 이때 고기룡(高基龍)이 자진하여 이 기를 받아들고 선두에서 군중들을 지휘하자 더욱 기세를 떨치게 되었으나, 일본 군경에 의해 시위는 진압되었다. 이용락은 재빨리 피신하였다가 오후 11시경 일본 군경에게 검거되어 밤중에 남창주재소로 압송되었다. 이 시위로 체포된 사람은 모두 9명으로 이들 가운데 2명을 제외한 7명은 재판 결과 6월 내지 1년형의 징역 언도를 받아 각각 부산·대구·서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울산군 온양면 남창리 지적원도」,1912.
「고기룡 등 2인 판결문」, 1919년 6월 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수락 등 4인 판결문」, 1919년 5월 1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경찰부, 『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14~1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209~210쪽.
장미정, 「울산지역의 3·1독립운동」, 울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울산정책연구소, 『울산의 독립운동사』, 항일운동사재조명위원회, 2008, 109~114쪽.

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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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경상남도 울산군 온양면 남창리
주소 울산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 146
도로명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장터길 24 일대
위치 고증 「고기룡 등 2인 판결문」·「이수락 등 4인 판결문」 및 『고등경찰관계적록』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울산군 온양면 남창리 지적원도」와 옛 주재소 자리의 남창 3·1만세운동 기념비를 통해 남창장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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