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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초계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멸실 / 초계장터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사정교 다리가 새로 건립되었다. 주변에 장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정의 1919년 3월 21일 합천군 초계면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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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원화(李源華)/전하선(全夏善)/성만영(成萬永)/김덕명(金德明)/ 노호용(盧浩容)/정점시(鄭點時)/구재범(具在範)/권국서(權國瑞)/김장배(金長培)/이원탁(李源鐸)/정수조(鄭守祚)/정판백(鄭判伯)/안주백(安周伯)/이만용(李萬用)
관련 내용 경남 합천군 초계면 무릉리에 사는 유지 이원화·전하선·성만영·김덕명과 대평리의 노호용·정점시는 전국의 의거에 발맞추어 초계면에서도 의거를 단행할 것을 논의하여 거사일을 3월 21일 초계장날로 정하고 동지를 규합하면서 모든 준비를 서둘렀다.

1919년 3월 21일 장날에 주도 인물들은 거사 준비물을 가지고 초계장터로 잠입하였다. 오후 1시가 되자 군중들은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이때 이원화·전하선·성만영·김덕명·구재범·권국서 등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많은 군중들이 호응하여, 시위대는 시장을 누비면서 목이 터지도록 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들은 일본군과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초계우편소를 습격하여 건물과 기물을 완전 파괴한 후 초계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갔다.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였으나 군중은 더욱 격분하여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때 합천경찰서로부터 지원 병력이 도착해 초계주재소 순사들과 합세하여 총을 발사하면서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총검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김장배 외 1명은 적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고, 군중을 지휘하던 이원탁은 다리에 총을 맞아 부상을 당했다. 한편 이 의거로 이원화·성만영·구재범·김덕명·정수조·정점시·정판백·안주백·권국서·이만용 등이 체포되어 각각 1년에서 3년의 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참고 문헌 경상남도경찰부,『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25∼2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329∼331쪽.
이정은,「경남 합천의 3·1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3,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234∼236쪽.
합천군사편찬위원회,『합천군사』, 합천군, 1996, 204∼206쪽.
『경남일보』, 2009년 3월 19일,「조찬용의 '경남의 3·1운동'(3) - 합천(대병·초계·대양)과 함안(군북) 3·1운동」.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
주소 경남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 206-31·192 ·19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고등경찰관계적록』과『독립운동사』3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초계시장의 정확한 위치는『합천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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