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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수촌리 3·1운동 피해지 - 옛 수촌교회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복원 / 옛 수촌교회 자리에는 1965년 지어진 벽돌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왼편에 1932년 지어진 옛 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정의 3·1운동 당시 기독교와 천도교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장안면·우정면 일대에서의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한 곳이자, 일제의 방화와 살육이 자행되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5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 방화학살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백낙렬(白樂烈)/김교철(金敎哲)
관련 내용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는 수원지역 3·1운동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3·1운동으로 인하여 교회 및 마을 거의 전부가 전소되는 한편 다수의 주민들이 체포되어 형을 받은 곳이다. 수촌리에서의 만세운동은 천도교 지도자 백낙렬(白樂烈), 기독교 전도사 김교철(金敎哲)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특히 백낙렬은 구장으로서 장안면사무소, 우정면사무소, 화수리경찰관주재소 등의 시위에 있어서 수촌리 주민들의 시위를 주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제공하는 등 만세운동 내내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일제는 화수리 일대에서 야간수색을 실시하며 1919년 4월 5일 수촌리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마을의 거의 모든 집과 수촌교회가 불탔고, 주민들은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4월 7일과 8일에도 일제의 만행은 이어져 만세시위 관련자를 연행하고, 천도교 전교 강습소와 백낙렬의 집 등 마을에 방화를 자행하였다. 수촌리 마을은 이로 인해 42채의 가옥 중 38채가 불탔다.

수촌교회는 1905년 교인 김응태의 주도로 정창하의 집에서 7명이 모여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1907년 초가 3칸을 매입, 예배당으로 사용해오다가 1919년 4월 5일 일제 경찰이 마을 전체를 방화했을 때 전소되었다. 그러나 1922년 4월 아펜젤러(A.R.Appenzeller)와 노블(M.W.Noble)의 협조로 가장말에 8칸의 초가 예배당을 건립, 사용해 오다가 1932년 1월 큰말 현재의 교회 위치에 초가 건물로 다시 옮겼다. 1965년 벽돌 건물이 신축되어 지금까지 교회로 사용하고 있으며, 1974년 초가지붕을 기와로 바꾸었으나 1987년 복원사업과 함께 다시 초가지붕으로 바꾸었다.
참고 문헌 칼톤 월도 켄달(Calton Waldo Kendall), 『한국의 진상(2)』, 1919년 7월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4, 1971, 613~614쪽.
화성시·수원대학교 박물관,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 화성시, 2003, 226~227쪽.
김선진, 『일제의 학살만행을 고발한다』, 미래문화사, 1983, 66~77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
주소 경기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74-1
도로명 주소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큰말길 32
위치 고증 1915년 국제평화회의 파견 대표 칼톤 월도 켄달(Calton Waldo Kendall)이 지은 『한국의 진상(2)』(The Truth About Korea)(『독립운동사자료집』 4)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을 통하여 현재 복원된 수촌교회 위치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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