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박진나루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낙동강 양안의 개발로 당시의 모습과 약간 차이가 난다. |
| 정의 | 1950년 8월 5일 미 제24사단 34연대가 북한군 제4사단이 낙동강도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작전을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낙동강돌출부 전투, 창녕 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34연대, 북한군 제4사단 |
| 관련 인물 | 처치, 이권무 |
| 관련 내용 |
미 제24사단은 1950년 8월 초 낙동강방어선 현풍에서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점인 남지에 이르는 37km 정면의 방어를 담당하였다. 이 일대의 지형은 강폭이 300~400m이고, 수심은 2~4m로‘S자’모양으로 흐르고 있으며 여러 곳에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창녕과 영산부근에는 전사에서 낙동강 돌출부로 부르는 서측으로 보다 크게 반월형 돌출부가 있고 있다. 합천 - 진주 서측에서 교량은 없으나, 도섭장과 도선장이 여러 곳에 있어 창녕과 영산을 지나 밀양을 거쳐 부산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북한군 제4사단은 군단으로부터 낙동강 돌출부 지역을 돌파하여 신속히 대구 후방을 차단하고, 경부간 도로를 따라 부산으로 진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합천 일대에 병력을 집결한 후 1950년 8월 5일 자정 무렵 도하공격을 개시하였다. 미 제34연대가 적의 도하를 확인하여 사격을 집중하여 저지하였다. 그러나 북쪽의 오항나루로 도하한 북한군 일부부대는 미 제34연대 제3대대 중대 방어진지들을 따라 기습적으로 침투하여 방어선의 일각을 돌파하려 하였다. 8월 5일 미 제1대대는 클로버고지(165고지)의 북한군을 역습으로 저지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큰 손실을 입었다. 이에 미 제19연대와 36연대 1대대가 영상가도를 지키기 위해 사격을 집중하면서 적을 가까스로 저지하였다. 북한군은 후속부대를 박진나루 터 - 오한나루 터 - 부곡리를 통해 계속 도하를 시도했으나 미군의 야포와 항공기 공격에 의해 저지되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249-253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9-3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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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대곡리 |
|---|---|
| 주소 | 경남 창녕군 남지읍 대곡리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1950년 8월 5일부터 북한군 제4사단이 낙동강을 도하 부산으로 진격하려는 기도를 미 제34연대가 역습 격퇴하여 북한군의 대구-부산선 진출기도를 방어한 전투지였음이 확인된다. |














창녕 - 영산지구 전투, 1950. 8. 31.~9. 9.(전쟁기념관 홈페이지)
박진나루 터 주변
박진나루 전경
박진나루 전적비
박진나루 전투가 벌어진 낙동강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