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수피아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준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원형보존 /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10일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한 수피아여학교의 교사·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준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0 수피아여학교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반일회(反日會)/백청단(白靑團) |
| 관련 인물 | 김마리아/김함나/남궁혁/박애순/윤형숙 |
| 관련 내용 |
1919년 2월 중순경 김마리아(金瑪利亞)가 동경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서 양림리에 사는 언니 김함나(남궁혁의 부인)에게 전해주었고, 남궁혁(南宮赫)의 집에서 광주의 3·1운동 준비모임이 이루어졌다.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은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가르쳤고 독립선언서 약 50매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3월 10일 수피아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만세시위를 선도하며 부동교 아래 작은장터를 거쳐 광주경찰서 앞까지 행진하였다. 출동한 일본군 무장기마헌병대에 100여 명이 체포되었는데 윤형숙(尹亨淑)은 한쪽 팔이 잘렸으나 끝까지 만세를 불렀고 그 사실이 3월 11일 일본 육군성에 보고되기도 하였다. 수피아여학교는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벨(Eugene Bell; 裵裕地, 1868~1925)이 1908년 대한제국의 인가를 받아 광주군 양림동에 설립하였다. 1911년 미국의 스턴스(M.L.sterns) 여사가 동생 제니 수피아(Jennie Speer)를 기념하기 위해 5,000달러를 희사, 그 기금으로 회색벽돌의 3층 건물을 준공하고 교명을 수피아여학교라 했다. 1929년 미국 남장로회부인전도회에서 모금된 50,000달러로 윈스브로우(Winsborough)홀을 준공하였다. 1937년 9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폐교하였다가 1945년 12월 해방 이후 다시 문을 열었다. |
| 참고 문헌 |
「박애순 등 77인 판결문」, 1919년 4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삼일운동사(하), 1971, 555~562·67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9-학생독립운동사, 1977, 287~290쪽. 광주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수피아 백년사 : 1908-2008』,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2008, 248~253쪽. 수피아여자고등학교 홈페이지(http://www.speer.h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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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 |
|---|---|
| 주소 | 광주 남구 양림동 256 |
| 도로명 주소 |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 13 (수피아여중고등학교) |
| 위치 고증 | 「박애순 등 77인 판결문」및『수피아백년사』등에 관련 사실이 실려 있다. 현재 3·1운동 당시의 학교 건물 수피아홀이 남아 있어 위치를 비정하였다. |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폐교할 당시 수피아여학교(1937년)
수피아여학교 학생
수피아여학교 커디스메모리얼홀
수피아여학교 수피아홀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홀 정면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홀 우측
광주3·1만세운동기념비
수피아여학교 윈스보로우 홀(1927년 이후)
수피아여학교 관련기사(『중외일보』, 1928년 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