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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곡성 압록 경찰전투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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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가수호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지연작전
종류 산야
상태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옛 압록교가 보존되어 있어서 전투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정의 곡성경찰이 1950년 7월 29일 북한군을 습격해 북한군 52명을 사살하였고, 경기관총, 트럭, 사이카 등을 획득하는 큰 성과를 이루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호남지구전투, 곡성 전투
관련 조직 곡성경찰, 북한군 제6사단 
관련 인물 한정일, 방호산
관련 내용 북한군의 남침 직후 호남지역은 거의 방어공백지역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군의 진출이 임박하자 그 지역의 군경은 응기응변으로 방어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구례에 있던 전남지역 동부 6군 경찰의 작전지휘소에서는 광주가 이미 북한군 제6사단 예하부대들에 의해 빼았겼고 그들의 남진이 계속되자 곡성경찰서 병력도 수습하여 경상도 방면으로 후퇴하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한정일 곡성경찰서장은 서원들과 함께 지역사수를 결의하고 곡성군 죽곡면 봉두산 기슭의 태안사로 들어가 보제루에 경찰작전지휘소를 설치하였다. 그는 이곳을 거점으로 유격전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경찰대원들은 북한군 운전병을 생포해서 순천에 주둔 중인 북한군이 압록을 통해 이동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3개 중대를 압록이 내려다보이는 고지에 배치했다. 압록은 구례·석곡·곡성 등지에서 이어지는 도로가 합쳐지는 삼거리인 동시에 한쪽은 강변이고 또 다른 쪽은 지리산 줄기의 산들로 협곡을 이루어 매복하여 공격하기에는 매우 유리한 지역이었다.

1950년 7월 29일 미리 매복하고 있던 곡성경찰 대원들은 압록교 주변에서 북한군 제6사단 예하부대들을 습격해 4시간의 전투 끝에 52명을 사살하였고 3명을 포로로 했으며, 경기관총과 다발총 등 70여 정, 3인승 사이드카 등을 획득하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이 때 최근수 순경이 전사하였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8월 6일 북한군의 반격으로 태안사에서 48명의 경찰관이 전사했다. 전쟁 중 태안사 건축물 28개 동 가운데 19개 동이 전화에 타 버렸다.
참고 문헌 내무부 치안국,『 경찰10년사』, 1958, 285쪽.
이용하,『 태안사별곡』, 한국참전단체총연합회, 2000, 151-186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주소 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138-1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경찰10년사』에 의하면, 곡성경찰은 부산방면으로 후퇴하지 않고 곡성군 죽곡면 봉두산 기슭의 태안사로 들어가 1950년 7월 29일 남하하는 북한군을 습격해 52명을 사살했으며, 경기관총, 트럭 사이드카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8월 6일 그들의 공격을 받아 47명이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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