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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상윤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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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의열투쟁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당시의 가옥은 없어지고 현재 밭으로 남아 있다.
정의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의열단 결성에 관여하고 밀양경찰서 투탄사건과 경북폭탄사건 등 의열투쟁에 가담했던 김상윤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밀양폭탄투탄사건
관련 조직 신흥무관학교/의열단/상해청년동맹/황포군관학교 
관련 인물 전홍표(全鴻杓)/황상규(黃尙圭)/김대지(金大池)/김원봉(金元鳳)/윤세주(尹世胄)/최수봉(崔壽鳳)/이종암(李鍾巖)/오성륜(吳成崙)/한봉근(韓鳳根)
관련 내용 김상윤(金相潤, 1897∼1927)은 밀양군 상남면 기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일명 김옥(金玉·金鈺)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마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910년에는 전홍표가 세운 동화학교에 입학하여 황상규·김대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1914년 중앙학교·배재학교 등에서 1년간 수학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다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1917년 단신으로 만주로 건너갔다.

1919년 3월 김원봉과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였고, 같은해 11월 김원봉 등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1920년 7월로 예정되었던 의열단의 제1차 의거인 밀양폭탄사건을 실행할 때 황상규·윤세주와 함께 입국하여 자금책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배신자의 밀고로 활동하던 동지들이 체포되고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여 김원봉과 합류하였다. 또한 같은해 12월에 있었던 최수봉의 밀양경찰서투탄사건의 배후 인물로 활약하였다. 1922년 3월에는 이종암·오성륜 등과 일본 육군대장 다나까[田中義一] 암살 의거에 참여하였다.

1924년 김원봉·한봉근·이종암 등과 의열단 참모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실행부 부원 2명과 결사대를 구성하여 3월 하순에 일본으로 잠입시켜 5월 임시의회개회를 기한 거사를 준비했다. 1924년 창립된 상해청년동맹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통일적 청년운동을 추진했다. 1925년 김원봉 등 의열단원들이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했지만 의열투쟁을 주장하며 입교하지 않았다. 1927년 10월 19일 중국 복건성 천주에 있던 설봉사에서 타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밀양경찰서에서의 폭탄범인의 검거」, 1921년 1월 13일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3)』,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상윤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요시찰인명부』, 조선총독부 아세아국, 1925.
경상북도경찰부,『고등경찰요사』, 1934, 96∼104·238∼239쪽.
박태원,『 약산과 의열단』, 백양당, 194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7, 1976, 312∼317·319∼32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11, 1976, 91∼94·656∼673쪽.
김영범,『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 비평사, 1997.
김영범,『(한국독립운동의 역사 26) 의열투쟁 Ⅰ - 1920년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37∼141·147∼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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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밀양군 상남면 기산리
주소 경남 밀양시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밀양경찰서에서의 폭탄범인의 검거」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기초로 지역의 증언과 토지대장 열람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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