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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성세빈·성세륭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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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문화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한 대지였던 곳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각각 집들이 들어서 있다.
정의 보성학원의 설립 및 민족교육에 헌신하였으며 울산의 대표적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던 성세빈·성세륭 형제가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2 보성학교 설립 교장이 됨||1925 동아일보 동면 분국장||1925 울산군청년연맹 집행위원||1926 사상단체 자오회 결성, 집행위원||1926 신간회 울산지회 부회장||1929 신간회 울산지회 동면분회 설립에 기여||1931 방어진 소비조합 전무이사, 방어진양조회사 감사||1909 사립보성 학교 설립시 땅을 기부
관련 조직 방어진소비조합/울산청년연맹/자오회/정우회/신간회 울산지회 
관련 인물 서진문(徐鎭文)
관련 내용 성세빈(成世斌, 1893∼1938)은 울산군 동면 일산리 40번지(213번지)에서 성수원(成水原)과 한월심(韓月心)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성세륭의 형으로 교육운동과 사회운동에 많은 공헌을 했다. 1919년 동면 일산리에 강습소를 설립하여 노동자 교육과 아동교육을 담당했으며, 1922년 보성학원(普成學院)을 설립하고 교장이 되었다. 1925년에는 동아일보 동면분국장과 울산청년연맹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에는 울산군 사상단체인 자오회 결성에 가담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6년 정우회의 울산 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28년에는 신간회 울산지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1928년 11월 서진문의 사망사건 이후 성세빈은 일제로 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고, 그 결과 1929년 보성학원 교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때를 기점으로 각종 청년운동에서 손을 떼고 경제 활동을 하면서 방어진소비조합 전무이사, 방어진양조회사 감사와 전무이사를 지냈고 어장과 정유소 등을 운영했다.

성세륭(成世隆, 1904∼1959)도 형 성세빈과 마찬가지로 울산군 동면 일산리 40번지(213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과 문맹퇴치 운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계몽했다. 개운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울산으로 돌아와 태화보통학교와 농소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 이 때 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심어주는 교육을 하다가 면직 당했다. 이후 형과 함께 보성학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신간회 울산지회 창립에 앞장섰다. 그리고 울산청년연맹에도 가입해 조사부장으로 문자보급과 농촌계몽, 금연, 금주운동을 벌였다. 1931년 12월 동아일보 기자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소식을 많이 기고해 울산을 전국에 알리는데 노력했다.
참고 문헌 「울산군 동면 일산리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동아일보』, 1922년 7월 9일, 「성씨의 교육열성」.
『동아일보』, 1929년 9월 3일, 「울산 신간대회, 지난 삼십일에」.
성덕영,『일산보성학교력개요』, 1996.
일성회,『해송이 비바람에 시달려도』, 청학, 1996.
이현호, 「일제시대 사립보성학교와 성세빈의 민족운동」, 『동구문화』2, 울산동구문화원, 2006.
울산정책연구소, 『울산의 독립운동사』, 항일운동사 재조명위원회, 2008, 334∼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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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울산군 동면 일산리 230
주소 울산 동구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제적등본」에 기재된 두 사람의 출생지와 거주지를「울산군 동면 일산리 지적원도」와 현재 지적도를 상호 비교하여 출생지와 거주지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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