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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崔益鉉, 1833~1906)은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면암(勉菴)이다. 그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1855년 과거에 급제한 최익현은 이후 예조좌랑·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873년에는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대원군의 10년 권세를 붕괴시켰다. 또 1876년에는 도끼를 메고 대궐 앞에 나가‘5불가소’를 올려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였다.
최익현이 의정부 찬정 등의 관직을 사양하고 충남의 정산으로 이거한 것은 1900년 음력 4월의 일로 벽지에서 은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곳에 거주하면서 1905년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올렸으며, 1906년에는 노구를 이끌고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대마도에 유배되었다. 그는 대마도에서 함께 유배된‘홍주9의사’들과 단식 투쟁을 전개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였으나, 그해 11월(음) 유배지에서 생애를 마쳤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