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구경찰서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탄압기구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1987년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다. |
| 정의 | 1908년 10월부터 해방될 때까지 경북과 대구지역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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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대한제국 시기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는 경상감영(慶尙監營)내 제승당(制勝堂)을 청사로 사용하였다. 그후 경찰권이 실질적으로 일본인 수중으로 넘어간 뒤에는 일본인 대구거류민단사무소(大邱居留民團事務所)를 일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1908년 11월 10일, 지금의 대구시 중부경찰서가 있는 당시 본정(서문로) 네거리 요지에 새로운 청사가 신축되었다. 그러나 이 청사도 협소하여 1930년 7월 현재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대구부(大邱府)가 경상북도를 관할하던 시기 대구경찰서도 경상북도 전역을 관할하였다. 이후 1908년 8월, 경무부(警務部)가 설립되어 대구부·칠곡·경산·성주 등 1부 15군을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구경찰서는 대구 구성읍(舊城邑) 지역 정도로 축소된 대구부와 달성군(達城郡) 일원을 관할하였다. 1914년 당시 대구부내에는 경찰관파출소 4개소와 달성군내에 주재소 4개소를 두었으나 독립운동의 탄압을 위해 해마다 경찰기구가 증설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파출소가 13개소로, 주재소는 15개소로 증가되었다. 1910년대 헌병경찰제도(憲兵警察制度) 시기에는 경찰서장과 경무부장은 물론 각종 경찰요직은 모두 지역의 헌병대장과 헌병장교 및 준사관 등을 겸직하고 있었다. |
| 참고 문헌 |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대구지적도」, 1927(대구향토역사관 소장). 향토역사관,『 옛 사진으로 본 근대대구』, 향토역사관, 2008, 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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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 본정통 |
|---|---|
| 주소 | 대구 중구 서문로1가 1-4 |
| 도로명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55 |
| 위치 고증 | 『옛 사진으로 본 근대대구』에 경찰서 사진이 있으며, 향토역사관 이호 학예사의 증언과 1927년「대구지적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현재 중부경찰서가 자리하고 있다. |














대구경찰서(「1:10,000(昭和12年修正測圖)」, 1937,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1930년 옮긴 후의 대구경찰서
1930년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자리로 옮기기 전의 대구경찰서
대구경찰서 터 전경
대구경찰서 터 앞 사거리
대구경찰서 터 우측
대구경찰서 터 옆 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