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채세윤 집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국내사적지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변형 / 슬레이트 지붕의 일자집이며 주위에 논과 밭이 있다. |
| 정의 | 북만주에서 신민부 등의 활동을 한 채세윤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6 민족반역자 숙청공작 |
|---|---|
| 관련 조직 | 한인자유보병대대/신민부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채세윤(蔡世允, 1902∼1973)의 이명은 근우(槿宇)이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출병과 한국독립군 소탕작전을 피하여 연해주로 이동하여 온 독립군과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무장군과의 연합부대인 한인자유보병대대(韓人自由步兵大隊)가 결성되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연해주의 자유시에 한인군사위원회(韓人軍事委員會)가 조직되고, 무장부대가 사할린 의용대로 개편되자 소대장으로 활동하다 북만주의 닝안[寧安]으로 돌아가 신민부(新民府)에 참여하여 별동반장(別動班長)으로 항일전투에 참전하였다. 1926년 신민부 빈장[濱江]지구 유격반장으로 하얼빈에서 민족반역자 숙청공작을 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8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36년 출옥 후 귀국하여 고향인 보성으로 돌아왔다. 1941년 군사에 관한 유언비어 유포로 체포되었다. 1968년에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8년 5월 20일, 「最高無期에 最下가 十年, 다섯사람에 대해 대련법원이, 新民府員에 對한 判決」. 「채원근우(채세윤) 판결문」, 1941년 5월 1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5, 1973, 518∼519쪽. 「채세윤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옥구군 회현면 증석리 |
|---|---|
| 주소 | 전북 군산시 회현면 증석2길 35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8년 5월 20일자 기사와「채세윤 공적조서」에는 관련 사실 및 본적지와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아들 채수을의 증언으로 위치와 관련사실을 확인하였다. 이곳은 채세윤이 1949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














채세윤 공판 관련 기사(『동아일보』, 1928년 5월 20일)
채세윤
채세윤 집 뒤쪽
채세윤 집 우측
채세윤 집 우측면
채세윤 집 좌측
채세윤 집 정면
채세윤 건국훈장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