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연성의병 전투지 - 왕방산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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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종류 | 산야 |
상태 | 변형 / 현 대진대학교의 뒷산으로, 동두천과 포천의 경계에 있다. |
정의 | 1907년 12월 의병장 김연성이 이끄는 40여 명의 의병이 기습작전을 벌인 곳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포천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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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
관련 인물 | 김연성(金演性), 유문재(柳文在) |
관련 내용 |
군대해산 이후 울분을 금치 못한 해산 장병들은 지방 의병들과 합류함으로써 의병의 역량을 배가시켰다. 1907년 9월 20일 이후부터 포천지역에서도 이러한 영향으로 의병활동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같은 해 10월 이후 포천을 주 무대로 의병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2월 김연성(金演性)이 이끄는 의병 40여 명은 포천군 서면 왕방산에 출동하여 기습작전을 벌였다. 김연성은 성균관에서 수학한 후 박사가 된 뒤 충청남도 관철 도주사 및 양주군 지방위원을 역임했다. 1907년 가을 양주출신 황순일(黃順一)의 권유로 의병 소모관이 된 이후 양주와 포천을 무대삼아 의병 전투를 전개하던 곳이었다. |
참고 문헌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유문재(柳文在) 판결문」 포천문화원, 『포천지역의 독립운동사』, 1991, 16쪽.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항일독립운동』, 경기도, 1995, 93쪽. 포천군지편찬위원회, 『포천군지』 상, 1997, 316·357쪽. |
지역정보
당시 주소 | 경기도 포천군 서면 선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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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왕방산 일대 |
도로명 주소 | |
위치 고증 | 「유문재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이원용(최익현선생숭모사업회 사무국장)은 왕방산이 현 대진대학교 뒷산이라고 증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