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천의병 전투지 - 금성면 월굴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원래의 높은 다리는 수몰되었으며, 다시 새롭게 고교를 설치하였다. 수위가 낮아지면 의병전투 당시 높은 다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 때에는 물이 많이 차 있는데다 새로 다리를 건설 중이어서 예전 다리는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
| 정의 | 1896년 5월 23일 제천의병과 관군의 전투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유인석(柳麟錫), 장기렴(張基濂), 이범직(李範稷), 신지수(申芝秀), 조달승(曺達承), 이원하(李元厦) |
| 관련 내용 |
1896년 2월 말에서 3월 초에 접어들면서 의병진 내에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져갔다. 4월 20일(음력 3월 8일) 동창에 주둔하고 있던 이강년 부대가 제천으로 돌아왔으며, 4월 25일(음력 3월 13일) 장기렴이 이끄는 관군 400명이 충주에 도착했다. 1896년 5월 24일(음력 4월 12일) 장기렴의 군대가 대덕산(大德山)에서 내려다보면서 북창에 주둔 중인 의병을 공격하였다. 북창의 군사들은 당해내지 못하여 물러나 높은다리[高橋]로 들어가 막았으나, 결국 관군은 북창, 교동, 죽문 밖의 높은다리 일대를 장악하였다. 이범직이 이문고개에 복병하였다가 일본군 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제천 본진이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은 더욱 심해져갔다. 유인석은 전날 패보를 듣고 후군장 신지수에게 강령(康翎)에서 오는 적병을 막도록 하였으며, 총독 조달승과 별모중군(別募中軍) 이원하에게 높은다리를 막아 지키게 하였다. 더불어 단양의 장림에 주둔하고 있던 전투 부대에게 관군의 배후를 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관군은 북창에 들어와 분탕질을 하고 신속히 진격하여 높은다리의 방어선을 우회하여 산길을 타고 고장숲까지 들어가게 되면서 형세가 불리해지게 되었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 1983, 429~430쪽; 462~46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 1984, 462~46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 1984, 478~479쪽. 박정수,「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462-463쪽.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186-187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청풍군 북면 월굴리 |
|---|---|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 64-2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사적지의 역사적 의미와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기존 ‘금성면 의병전투지’에서 ‘금성면 높은다리 의병전투지’로 사적지명을 정정하였다. 당시 높은 다리는 수몰되었으나 현재 그 위에 같은 이름의 다리가 새로 놓여 있다. 2008년 조사 당시 수위가 낮아지면 높은다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금성면 의병 전투지 전경
물속에 잠겨있는 당시 높은 다리
현재 높은 다리[高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