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창흥의숙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창흥의숙의 후신인 창평공립보통학교는, 화재 이후 현 창평초등학교 소재지로 이전하였다. 창흥의숙이 있었던 곳은 현재 창평면사무소가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06년 4월 1일 고정주가 설립하여 신학문을 교육하던 창흥의숙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영학숙/창흥의숙/창흥흥학회 |
| 관련 인물 | 고정주(高鼎柱)/고광표(高光表)/김홍용(金洪鏞)/김병로(金炳魯)/고재욱(高在旭) |
| 관련 내용 |
을사조약 체결 후 창평으로 돌아온 고정주(高鼎柱)는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1906년 4월 1일 창흥의숙과 영학숙을 설립한 것이 그것이다. 고정주는 근대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뜻 있는 인사들과 함께 창흥의숙을 설립하였다. 창흥의숙의 교사(校舍)는 창평현 객사를 수리하여 사용하였고, 고정주와 이병성이 교장·교감을 맡았다. 이들은 교사 1명을 초빙하여 지역의 젊은 청년들에게 한문, 국사, 영어, 산술 등 신학문을 가르쳤다. 교육과정은 초등과 3년, 고등과는 6개월이었다. 1911년 6월 15일 창흥의숙은 사립창평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고정주는 임야 50여 정보와 전답 약간으로 학교를 유지하였다. 그 후 고광표·김홍용 등이 각자 10여 두락씩의 답을 희사하여 창흥흥학회를 조직해서 운영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데 기여하였다. 창흥의숙에서 수학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병로(변호사)·고재욱(동아일보 사장) 등이 있다. |
| 참고 문헌 |
『황성신문』, 1908년 4월 8일, 「昌興設校」. 『동아일보』, 1933년 10월 3일, 「高鼎柱氏 逝去, 창평 자택에서」. 『경향신문』, 1959년 3월 20일~4월 30일자. 『조선총독부관보』, 1911년 6월 16일 1면, 「고시」. 담양군,『 담양군지』(하), 담양군, 2002, 693쪽. 전병무, 『항일변호사의 선봉 김병로』, 역사공간, 2018, 42-45쪽. 홍영기, 「한말 고정주의 활동을 통해 본 호남의 근대교육」, 『우송조동걸선생정년기념논총』 Ⅱ, 나남, 1997, 164-179쪽. 임소정, 「호남학회와 춘강 고정주에 대하여 : 신교육운동을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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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창평군 군내면 읍리 |
|---|---|
| 주소 | 전남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돌담길9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담양군지』(하)에 1906년 4월 1일 창흥의숙이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동아일보』 1933년 10월 3일 기사에 융희년간에 고정주가 창흥학교를 설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지 주민 고영준(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거주)의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황성신문』 1908년 4월 8일자에 융희 2년 3월 26일에 개교식을 거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창흥의숙 터(2022년 촬영)
창흥의숙 터(2022년 촬영)
창흥의숙 터 전경(2022년 촬영)
창흥의숙 터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