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용필 집터 - 광복회 군자금지원 협의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국내독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광복회 군자금 지원을 논의했던 조용필의 집은 없어지고, 빈 터만 남아 있다. |
| 정의 | 1915년 결성된 광복회의 군자금 지원활동을 협의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광복회 |
| 관련 인물 | 윤창하(尹昌夏)/정진화(鄭鎭華)/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최준 |
| 관련 내용 |
광복회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예천출신의 조용필(趙鏞弼)은 1915년 10월 자신의 집에서 영남지방 조직 담당자였던 채기중(蔡基中)을 만났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산가들에게 보낼 ‘경고(警告)’라는 제목의 독립운동 자금모집 포고문을 작성하였다. 정진화(鄭鎭華)·윤창하(尹昌夏)·유창순(庾昌淳)은 이 포고문을 예천과 함창, 그리고 상주지역 부호들에게 발송하였다. 이에 권준오로부터 200원의 군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한 윤창하는 경주 일대의 부호 명부를 작성하여 채기중에게 전달하였다. ‘경상북도 15군 조사기’라는 제목이 붙은 이 명부에는 부호 20여 명의 주소와 성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광복회는 이 명부를 이용하여 최준(崔浚)을 비롯한 경주군 부호들에게 포고문을 발송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박상진 등 19인 판결문」, 1919년 9월 2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1, 1976, 674쪽. 김일수, 「일제강점기 경북 예천지역의 민족운동」, 『계명사학』 8, 계명사학회, 1997, 311~312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
|---|---|
| 주소 | 경북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499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박상진 등 19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조신래(61세, 전 이장)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정하였다. |














조용필 등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년 9월 22일)
조용필 집터 우측
조용필 집터 전경
조용필 집터 좌측
조용필 집터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