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홍주의병 전투지 - 홍주성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기타(성곽)
상태 변형 / 성곽 주변 가옥을 철거하고 토지매입·주변정비 및 성곽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홍주성 안에는 홍성군청이 위치하고 있다. 홍주성은 성곽·조양문·아문이 1972년 사적 제231호로 지정되었으며 안회당과 여하정이 1997년 추가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의 1906년 5월 20일부터 31일까지 홍주의병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룬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민종식(閔宗植)/채광묵(蔡光默)/유준근(柳濬根)
관련 내용 홍주의병은 1906년 3월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에서 재봉기하였으나, 청양 합천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이후 홍주의병은 5월 9일 부여의 지티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민종식(閔宗植)을 다시 대장에 추대하고, 부대를 정비한 후 5월 13일 서천관아를 점령하였다. 이들은 남포읍성 전투에 성공하여 병사를 의병에 귀순시키는 등 의병을 모집하면서 5월 19일 홍주읍에 들어와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민종식은 이후 천제를 지내고 의병의 편제를 보강하였다. 아울러 인근의 각 군수에게 훈령을 내려 양식과 군기의 징발과 모병을 지시하였다.

일본군은 5월 20일부터 여러 차례 홍주성을 공격하였다. 그럼에도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조선통감 이토히로부미는 하세가와요시미치에게 명령을 내려 조선주차군 제60연대의 보병 2개 중대와 기병 반개 소대, 그리고 전주수비대 1개 소대를 파견하여 홍주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 결과 홍주의병은 5월 30일 밤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격으로 이튿날 새벽 결국 채광묵(蔡光默) 부자 등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채 패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홍주의병 80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그 중에서 유병장(儒兵將) 유준근(柳濬根)을 비롯하여 9명은 대마도에 유배되기까지 하였다.
참고 문헌 홍순대,『해암사록』.
『황성신문』, 1906년 6월 18일, 2면 4단,「義擾調査」.
「한국각지폭동잡건」,『한말의병자료Ⅲ』한국독립운동사자료총서 제17집, 독립기념관, 2002, 75-79쪽.
김상기,「1906년 홍주의병의 홍주성전투」,『한국근현대사연구』37, 한국근현대사학회, 2006, 126-157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남도 홍주군 주북면 성내리
주소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98 일대
도로명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일대
위치 고증 「한국각지폭동잡건」(『한말의병자료』Ⅲ권 수록)에 1906년 5월 30~31일 전개된 홍주의병의 홍주성 전투상황이 보고되어 있다. 사적 제231호로 지정되어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천읍 삼방로 95 전화: 041-560-0441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14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