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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백산상회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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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국내독립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백산상회 건물이 있던 자리에 현재 프라임 원룸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14년 안희제가 독립운동을 위한 국내외 연락망 확보와 자금 마련을 위해 설립한 회사인 백산상회가 있었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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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백산무역주식회사/조선국권회복단/대한민국임시정부/갑자부동산주식회사 
관련 인물 안희제(安熙濟)/이유석(李有石)/추한식(秋翰植)/최준(崔浚)
관련 내용 백산상회(白山商會)는 안희제(安熙濟, 1885∼1943)가 국외 독립운동지도자들과의 연락망 확보와 독립운동자금 조달을 위해 고향의 전답 2,000두락을 팔아 기금을 마련해 이유석·추한식 등과 함께 1914년에 설립하였다. 상회의 명칭은 그의 호 백산에서 땄다.

백산상회는 설립초기에는 곡물·면포·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상회였다.

1917년 11월경 합자회사로 전환했다가, 1919년 5월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되었다. 이것은 영남의 대지주 자본의 적극적인 참여로 가능하였다. 안희제 등 백산상회 관계자 대다수는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였다.

1921년 8월에는 자금난으로 경영위기를 맡게 되었으나 사장 최준(崔俊)이 소유재산 대부분을 투자해 경영에 매진했다. 1925년 이후 주주와 중역 사이에 자금 횡령 문제로 서로 고소하는 일대 분규에 휩싸여 사실상 영업 중지 상태에 빠지고 1928년 1월에 자진 해산하였다.

백산상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독립신문』의 국내 보급 통로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경비를 조달해 주기도 하였다. 안희제는 독립운동을 위한 독립운동자금 조달과 『독립신문』 보급 등 국내의 주요 독립운동기지로서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던 것이다.

백산상회 건물은 해산 후 갑자(甲子)부동산주식회사로 넘어갔고, 현재는 개인 소유이다.
참고 문헌 「토지대장」.
「부산부 고도정 외 20정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3.
『동아일보』1925년 10월 22일, 「重役新選, 공긔가 험악한 부산 백산상회 총회」.
『조선총독부관보』, 1917년 11월 17일, 「휘보-상사, 회사설립인가」.
中村資良,『朝鮮銀行會社要錄』, 東亞經濟時報社, 1923. 228쪽.
오미일, 「일제시기 안희제의 기업활동과 경제운동」, 『국학연구』, 국학연구소, 2000, 1∼24쪽.
이귀원, 「안희제」,『시민을 위한 부산인물사』, 선인, 2004, 74∼89쪽.
이동언, 「백산 안희제 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4, 313∼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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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부산부 본정 3정목 12
주소 부산 중구 동광동3가 12
도로명 주소 부산광역시 중구 백산길 13-1
위치 고증 『조선총독부관보』1917년 11월 17일자 및 『조선은행회사요록』등에 백산상회의 설립에 관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으며, 『조선은행회사요록』에 백산상회의 주소지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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