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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종일 생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국내독립운동
종류 가옥
상태 복원 / 1986년과 1990년에 복원되었다.
정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보성사 사장을 역임한 이종일이 태어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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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19.3.1 3·1독립만세운동
관련 조직 독립협회/보성사 
관련 인물 권동진(權東鎭)/손병희(孫秉熙)/오세창(吳世昌)/한용운(韓龍雲)/인종익(印宗益)/안상덕(安商德)/강기덕(康基德)/김원벽(金元璧)/함태영(咸台永)/이경섭(李景燮)/박인호(朴寅浩)
관련 내용 이종일(李鍾一, 1858~1925)은 1858년 태안에서 태어났으며 15세에 상경하여 한학을 공부했다. 1894년 보성학교 교장이 되었으며, 1896년 독립협회에 참여했다. 1898년 3월에는 이승만(李承晩) 등과 함께『경성신문』을 창간했으며, 8월에는『제국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1906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 월보과장과 보성사(普成社) 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이종일은 1919년 1월 하순부터 손병희의 집에서 회합을 갖고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를 했으며, 2월 초순부터 3·1운동에 참가할 동지들을 규합하면서 독립선언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그는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21,000매를 인쇄해 한용운 3,000매, 인종익 2,000매, 안상덕 2,000매, 강기덕·김원벽 1,500매, 함태영 1,200~1,300매, 이경섭 1,000매씩 등을 직·간접적으로 배포하였다. 그는 박인호와 함께 독립선언의 취지를 전국에 보도하고 독립사상을 고취시키 위해『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그는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여한 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1920년 10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이종일 신문조서(제2회)」;
「이종일 이종린 대질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1, 1990, 167~168쪽.
국사편찬위원회,『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1, 1990, 161~16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2·5·8·9, 1971~1977.
박걸순,『이종일의 생애와 민족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7.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남도 태원군 북이면 정포리
주소 충남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08
도로명 주소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위치 고증 이종일이 태어난 곳은 충청남도 태안군 북이면 정포리로 1914년 8월 지방행정구역 변경으로 충청남도 서산군 원북면 반계리로 변경되었다.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으며, 향토사학자 이은우의 고증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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