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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궁삼면 농민운동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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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80여 년이나 토지소유권 투쟁의 대상이었던 궁삼면의 농지들은 그 자리에 있다.
정의 1880년대 토지사기사건이 동양척식주식회사와의 소유권 분쟁으로 이어져 그후 1970년 농지개혁이 완료되는 시기까지 80여 년 동안 궁삼면민들이 자신의 땅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였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나주 궁산면 토지 탈환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전성창(全聖暢)
관련 내용 1888년 가뭄을 계기로 경저리(京邸吏) 전성창이 궁삼면의 민유지를 침탈하면서 시작되어 해방후 1970년 농지개혁이 완료되는 시기까지 8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전개된 토지 소유권 분쟁을‘나주 궁삼면 토지탈환’이라 한다.

전성창은 가뭄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농민들에게 토지세를 대납해 주겠다고 백지날인을 받은 후 넓은 토지를 모두 자기 앞으로 소유권을 부당하게 이전하였다. 농민들은 반발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지만, 전성창은 이를 무시하고 토지를 경선궁(慶善宮)에 팔았고, 경선궁은 이를 다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팔았다. 1910년대에 농민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소작료 불납운동과 법정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실패하였다. 1919년 3·1운동과 함께 궁삼면 농민들은 토지소유권 탈환을 위해 농민집회를 갖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 결과 1926년 조선총독부는 일부의 토지만을 무상으로 반환하였고, 궁삼면 토지소유권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해방 후 궁삼면의 토지소유권 문제는 미군정의 신한공사로 분쟁이 이어졌다. 농민들은 남한의 토지개혁이 이루어지던 1950년대 이후에야 유상으로 토지를 되돌려 받았다.
참고 문헌 『중외일보』, 1930년 8월 2일,「문제 많든 궁삼면 토지사건 又陳情」.
『중외일보』, 1930년 8월 23일,「나주 궁삼면사건 陳情員 陳情내용」.
『목포신보』, 1930년 11월 19일,「30년형의 소작쟁의」.
『목포신보』, 1930년 11월 25일,「나주군 궁삼면민에 구제자금 대출」.
장석흥,「일제하 영산포식민기지의 형성」,『한국학보』58, 일지사, 1990, 43~76쪽.
박이준,『한국근현대시기 토지탈환운동 연구』, 선인, 2007, 55~160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나주군 왕곡면 양산리
주소 전남 나주시 왕곡면 양산리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중외일보』1930년 8월 2일·23일 기사와『목포신보』1930년 11월 19·25일 기사『한국근현대시기 토지탈환운동 연구』에서 일제강점기 궁삼면 농민운동의 내용과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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