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문양목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국내사적지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생가 터는 공터로 되어 있으며, '독립운동가 문양목 선생 생가지'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
| 정의 | 대한인국민회 회장 등을 역임한 문양목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8.3 스티븐슨 처단사건 |
|---|---|
| 관련 조직 | 대동보국회/대동공보사/애국동지대표회/한인소년병학교/대동신서관/대한인국민회/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
| 관련 인물 | 전명운(田明雲)/장인환(張仁煥)/박용만(朴容萬) |
| 관련 내용 |
문양목(文讓穆, 1869~1940)은 태안군 남면 몽산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하와이 사탕농장 노동자 모집에 응모하여 하와이로 건너갔다. 19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결성하고 회장에 선임되었으며, 대동공보사(大同公報社) 사장 겸 『대동공보』 발행인을 맡았다. 그는 1908년 3월 전명운(田明雲)·장인환(張仁煥)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사건 재판후원회를 결성하고, 판사전권위원에 임명되어 재판을 후원하는 등 국내외 동포들을 대상으로 국권회복의식을 고취시켰다. 1908년 7월에는 미국 덴버에서 박용만(朴容萬)이 개최한 애국동지대표회(愛國同志代表會)를 후원하였으며, 박용만이 네브라스카주에 한인소년병학교(韓人少年兵學校)를 설립하자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191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대동신서관(大同新書館)이란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같은해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총무가 되어 활동했다. 1911년 2월에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회장에 당선되어 군인양성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독립군기지 개척과 해외 한인의 통합기관을 조직하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에 지방총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한인국민회의 중견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40년 12월 25일 사망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朝鮮總督府 警務局, 『國外ニ於ケル容疑朝鮮人名簿』, 朝鮮總督府, 1934, 247쪽. 『南平文氏族譜』, 1988. 김원용, 『재미한인50년사』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8, 1974, 661·679~686쪽. 김도훈, 「공립협회(1905~1909)의 민족운동 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4,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1989, 36~39쪽. 최기영, 「구한말 미주의 대동보국회에 관한 일고찰」, 『박영석교수화갑논총』, 1992, 114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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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리 |
|---|---|
| 주소 |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 268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국외에서의 용의조선인명부』에 본적지가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문양목 후손의 「호적등본」과 『남평문씨족보』 등을 통해 문양목이 태안군 남면 몽산리 268번지에서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후손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고증받았으며, 현재 몽산리 268번지에는 '독립운동가 문양목 선생 생가지'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














문양목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문양목이 총회장으로 있었던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관
문양목 가족사진(1917년경)
문양목
문양목 생가 터(정면)
문양목 생가 터(왼쪽)
문양목 생가 터(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