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박도경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박도경이 거주했던 곳은 현재 수풀로 덮혀 있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 정의 | 고창과 장성 등지에서 활약한 한말 의병장 박도경이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을사늑약 |
|---|---|
| 관련 조직 | 문수사 |
| 관련 인물 | 박도경(朴道京), 기삼연(奇參衍), 김익중(金翼中), 서석구(徐錫球), 전수용(全垂庸), 김치곤(金致坤) |
| 관련 내용 |
박도경(朴道京, 1874~1910)의 자는 화옥(化玉)이며, 호는 경화(京和)이다. 도경(道京)은 아명이며 이름은 경래(慶來)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문수사에 주둔하고 있던 기삼연이 지휘하는 의병대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 모양현을 습격하여 무기고를 탈취하였으며 김익중(金翼中)·서석구(徐錫球)·전수용(全垂庸)·김치곤(金致坤) 등과 전남 각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1907년 9월 영광에서 포사대장(砲射隊長)으로 활약하였다. 장성에서 20여 차에 걸쳐 일본군과 교전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1909년 4월 20일 부하 100여 명과 부안 상서면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 전세가 불리해지자 방장산(方丈山)으로 거처를 옮겼다. 은신처가 노출되어 체포되어 같은 해 12월 광주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아 대구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일인의 손에 죽는 것은 구차하다며 옥중에서 음독, 자결하였다. 1968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박도경 판결문」(광주지법 전주지청, 1919년 12월 3일). 이기화편, 『고창의 맥』, 고창문화원, 1992, 220~223쪽. 전북향토문화연구회,『전북의병사』 하, 전북향토문화원, 1992, 533쪽.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편찬위원회편,『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8,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2, 559~56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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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307 |
|---|---|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30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박도경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있으며 제적등본에 주소가 기재되어 있다. |














수풀로 덮힌 박도경 집터
박도경 집터 원경
한말의병박도경추모비
박도경
박도경 집터에서 바라본 문수산